241218 새벽기도
추성훈목사님
마태복음 6.16-34
<요약>
우리에겐 영적 시력이 필요하다. 옳른 것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땅의 부귀영화를 노려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달리, 하늘상급을 쌓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본문>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설교>
보통 사람의 시력이 1.0만 되어도 좋다 한다. 그런데 몽골인은 3.0이라고 한다. 7.0도 있다 한다. 이런 시력의 이유는 환경적 이유가 크다고 한다. 목축을 하기에 늑대등을 보기 위해 어렸을때부터 멀리 보는 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주 정도 암실에 있는 훈련이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불의와 온전한 것을 구분하는 영적 시력이 필요하다.
그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이 말씀은 끼고 살지만 불의하게 살아가는 외식들을 경계하셨다.
종교적 의는 땅의 상은 받아도 하늘의 상은 받지 못한다.
이렇게 모든 신앙의 초점이 나를 향하기 시작한다면 영적 맹인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영적 시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보면 금식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하며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 외식을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한다. 당시 금식은 속죄의 의미였다. 1년에 한번 금식해야 하는데 바리새인등은 두번씩 했다.
누가복음 18장에 바리새인을 보면 이레에 두번 금식한다고도 한다. 스스로를 아주 자랑스럽게 만족하며 기도하고 있다. 한두명이 아니고 시대적 분위기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것 같다.
금식이 힘들고 안색이 어려운건 맞다. 외식하는 자들은 일부러 표정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걸 보고 거룩하게 보는 사람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기상을 이미 받았다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등 있는 그대로 있으라 한다. 하나님에게만 보이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이리 책망하시는데에 대한 것을 반면교사삼아 영적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19절 20절에서도 그렇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한다. 좀이나 도둑이 들지 못하는 그곳. 이 좋은 곳을 탐내고 훔치려는 도둑이 많지만, 그것이 없는 곳이다. 이땅에서는 금고의 기술발달처럼 금고 터는 기술도 발달하는데, 누구도 훔쳐가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보물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풍요만 보며 땅의 보물을 쌓으며 살아간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마음도 있다 한다. 우리는 이제 생각해야 한다. 매일 은혜를 생각하며 땅에서 살지 않는가. 하나님을 궁금해하지 않는건 아닌가. 다시 이 새벽에 하나님께 부르짖자. 영적 시력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자. 우리대적 마귀는 땅만 보고 유혹할텐데,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지 기억하고 깨달아야 한다.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호흡마저도 우리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영적 시력을 갖길 원한다.
은밀한 중에서 갖는 하나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에게 갚으시는 하나님. 영원한 시간을 위해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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