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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새벽기도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0513

설교말씀 모아/Dongan 새벽

by Choorysostom 2024. 5. 21. 12:15

본문

240513 새벽기도

사 43. 14~28
윤일식 목사님

<요약>
들짐승들도 공경하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겨워했다.
하나님은 이방신과 다르게 이스라엘을 만들고 사랑(야차르)하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싫증내고 귀찮아했다(야가흐).
우리도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주님을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자.


<본문>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설교>
선지서는 어떤 왕인때가 이해에 도움 된다.
이사야는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남유다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 시대는 경제적 정치적으론 안정되었으나, 종교적으로 산당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쓰는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시기 북이스라엘은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사야는 3부분으로 나뉜다.
1~39 이스라엘에 대한 다른 민족들의 핍박 등
40~55 고레스왕의 시절 포로가 되나 힘을 꺾고 귀환할 것
56~57 귀환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앞서 말했듯, 이 이야기는 적어도 100년 후의 이야기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나 포로를 이야기 하는 것이 듣기 좋을리 없었다.
물론 이사야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게 쉽게 들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14절에 연락하던 배를 탄다는 건 풍류로 쓰던 배를 가지고 도망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만큼 바쁘고 무섭게 포로생활을 할 것이란 이야기이다. 
하지만 16절에 나오듯 출애굽 시 홍해가르며 구원하신 역사를 이야기하시며,  18~21에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야기하신다.

19절에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때 예루살렘과 바빌론 사이에는 광야가 있어서 강도도 많고 하여 이동이 어려웠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올때도 북이스라엘쪽으로 빙 돌아서 왔다. 이런 상황을 보고 강력한 역사하심으로 포로에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느낌으로 하나님이 길을 내신다고 한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들짐승들도 존경한다 하는데, 들짐승들이 존경한다고 하는 말은 카바드로, 원어적으로 무거움이라는 의미이며, 보통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나 공경을 포현한다.

22~28에는 이스라엘의 죄악된 모습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단순히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괴롭게 여겼다. 
괴롭다는 의미는 야가흐 라는 히브리어로 계속 반복되어 싫증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23절의 번제의 양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부분도 실제 없는 것보다 싫증난 상태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과 가까운 의미이다. 들짐승들도 공경하는데, 이스라엘은 귀찮아 한것이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제물도 많이 필요하고 피도 흘리는 제사가 많았다. 신들이 자고있다는 개념으로 인식한 것이었다. 그래서 23절에 제물로 수고롭게 했다거나 유황으로 괴롭게 하지 않았다 등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다른 신처럼 힘든 제사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여기며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겼다.
그래서 24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이 싫증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28절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조롱거리가 된다고 하셨고, 그런 일들의 원인은 죄악이었다.

21절에 이 백성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지음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망각했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파라오에게 나가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이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예배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짓다라는 의미는 야차르 라는 단어로, 흙으로 빚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왔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드리는 척만 했다는 것이다.
마치 잘난 것과 잘난척이 다른 것처럼,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척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예배드리면 예배드린는거지 그것을 어디가서 자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배드리는데 싫증이 나는 야가흐의 상태에서  예배드리는 척만 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백성처럼 하지 말고, 
진심으로 예배하는 야차르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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