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0 새벽기도
이충훈 목사님
데살로니가전서 2:1-12
<요약>
바울이 살았던 것 처럼 주님이 영광받는 삶을 살자. 사람의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보고, 나의 행복과 기쁨을 주장하기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까지 살아가자.
<본문>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 요약 및 해설>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6개월가량을 머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른 신앙생활을 통하여 주변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살전 1:6-7). 그러나 이러한 데살로니가교회를 공격하는 이단들이 있었고,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떠난 후에도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사역하였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하나님께 합당하게(12절)”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사역했기에 이단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오늘 본문에는 데살로니가에서 벌인 바울의 사역에 대한 변호가 있다. 빌립보에 이어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데살로니가. 오직 하나님만이 평가하심을 이야기한다.
빌립보는 바울이 유럽에서 가장 먼저 개척한 도시이다.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는 160km정도로 일주일정도 걷는 거리이다.
이러한 수고를 하며 갔지만,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헛되이 생각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여긴다고 한다. 3절과 4절의 옳게 여기심과 감찰하심이란 단어는 같은 원어를 쓴다.
그리고 자기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대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했다고 한다.
바울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충분히 후원을 받을만 함에도, 천막을 깃는 본업을 하며 주장하지 않았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만난 하나님은 마음의 선한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흔히들 하는데, 하나님은 자신이 이미 영광인데 인간의 영광이 하나님께 도움이 될까. 그리고 1등한 승자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보면,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영역, 연기면 연기 사업이면 사업 공직이면 공직 등등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주께하라 하는 말씀이 참 좋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소설의 제목도 참 좋다. 모든 행위의 내적인 동기는 주님께만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보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에게 목사, 심지어 부끄럽게도 주의 종이라는 과분한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이지만, 가끔 자기의 의를 드러낸다거나 하는 것으로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는 등 교회도 가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 때가 있다.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기쁨을 위해 오해하거나 돌려말하거나 하기도 한다. 루터의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이라 하는 솔라를 생각하지만, 매번 그렇게 되진 않는다.
나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보며 눈치보는 경향이 남아있어서 항상 노력한다. 하나님보다 사람이 기뻐하길 원할때도 있는 것 같다.
또한,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주장하는 부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일종의 보상심리일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잘 해줬는데 다시 잘해주지 이런것.
오늘 말씀을 적용하려 하니, 헛된 인생, 주장하는 인생을 살지 않고 싶어졌다.
헛되다는 헬라어로 케노스이다. 예수님의 비움에서도 케놉시스로 쓰인 그 단어이다.
바울은 유대인 최대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예수를 다메섹에서 만나고,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인생을 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그리스지역 전도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웠으니 얼마나 감사했을까. 하나님만 생각하며 감사하자.
최근 마을에 별세하시는 분이 많아 여러 생각에 잠겼다. 임종예배를 드리는 분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며 울적해젔다. 그런데 그때, 호흡기에 생명을 연장하는 속에도, 성도의 모습으로인생의 끝을 마지하는 자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일시적인 만족일 뿐이다. 언제까지나 나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 기뻐하자. 그렇게 남들에게 순수한 마음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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