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8 새벽기도
김영진목사님
예레미야 1:11-19
<요약>
그냥 작은 마을이 아닌 죄로 몰락한 집안이 사는 곳에서 나타난 예레미야. 그런 예레미야에게 주님은 쇠기둥과 놋방벽, 방어가 되어주신다고 한다.어두운 세상 가운데 우리의 성읍되시는 주님을 경험하자.
<본문>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15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18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설교>
할렐루야. 오늘 말씀도 부르심의 말이었다.
종교개혁을 시작하는 시기. 부탁을 거절하니 슬플 정도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하나님께 사랑하자.
오늘은 무엇을 하시고 어찌 격려하시는지에 대해서 보자.
11절에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고 한다. 왜 살구나무일까. 히브리인의 언어유희로 배를 좀 보세요 하면 먹는 배인지 타는 배인지 모르는것처럼 맥락을 봐야 하는 것이다.
살구나무 가지는 히브리어로 샤케드라는 단어로 샤카드(지켜보다)와 비슷하다. 그래서 살구나무 하면 지켜보신단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말이 이루어질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지켜보는 것이 어떤 상황인가?
13절에 끓는 가마,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다고 한다.
이 끓는 가마는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이야기한다.
그 심판이 북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론 바빌론으로 망한건데, 유다의 동쪽에 바빌론이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큰 사막이 있는데 바빌론이 돌아서 북쪽에서 온다.
16절에 우상숭배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와 공동체와 단체가 하나님과 멀어질 때 우상숭배를 한다.
그런데 백성들이 우상숭배 안했다고 2장 23절에 기록되어있다.
그렇게 그들은 우상인지 모르거나 혼합주의로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자들 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것.
모든 맥락에서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보통 방법은 있다 . 바알은 풍년의 신, 물질의 신이었다. 우리의 방향도 물질과 돈에 있다면 비슷할 수 있다.
17절에 허리를 동이고(각오단단히 하기) 심판받는것을 말해야 한다. 예레미야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도 예레미야에게 힘을 주고 있다.
만약 예레미야가 말씀선포를 거부한다면,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자신에게 들어올지도 모른다.
우리도 하나님과 가까울때는 보호하심이 느껴지지만, 멀리 떨어지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도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 때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보호하실까.
마치 놋성벽과 가치 지킨다고 하신다. 어제 예레미야는 아나돗이란 마을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아나돗은 알고보니 죄를 짓고 몰락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다.
이런 몰락한 자에게 맡긴 일이 사회지도층에 대한 심판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하나님이 지켜주시는데, 하나님은 견고한 성읍이자 쇠기둥, 놋성벽이 되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특이한건 공격이 아니라 방어의 존재라는 것이다.
전할 말들이 남들에게 힘든 것들이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 주님이 방벽되신 것이다.
예레미야는 실제로 많은 협박을 받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작은 아이라 감당하지 못했다는 예레미야.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하려 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지키시는 하나님이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하나님 등 여러 하나님의 모습이 있지만, 오늘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 와닿는다.
하나님이 단단한 성읍되시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이다. 그 어려움을 지켜주시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며 이상한 느낌을 봤다.
선지자들은 모두 실패한 사역이다. 백성들은 이야기듣지 않고 나라는 망한다. 이사야에서도 누구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도 안듣는데 왜 말하라고 하실까.
그건 아무도 듣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사이에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미래가 밝지 않다.
기술 대비 의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타락과 저출산 등 어려움이 많다.
그럴 때마다 교회와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래도 드는 생각은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누군가로 회복되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명과 다니엘 세 친구, 순교한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살아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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