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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새벽기도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1223

설교말씀 모아/Dongan 주일 및 기타예배

by Choorysostom 2024. 12. 31. 15:59

본문

241223 새벽기도
진흥재 목사님

요한복음 10:1-6

 <요약>

우리집 강아지도 가족들 발소리를 한명 한명 구분하는 것 처럼, 우리도 강도와 절도자의 말이 아닌 예수님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본문>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말씀>
오늘의 본문은 선한목자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락이다.
오늘 이해를 위해 직전 이야기인 요한복음 9장을 살펴보자.
요 9장은 실로암에서 눈을 뜬 맹인 이야기인데, 예수님을 통해 육과 영의 눈이 띄여졌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그 앞에서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앞을 못보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예수님은 차라리 맹인이면 모르겠지만 스스로 본다 생각해 죄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에 양 우리의 비유를 드신다.
당시 목축문화는 양들을 같이 보관하고 문을 여닫으며 양을 보관했는데, 담이 낮아 강도와 절도, 이리떼가 있기도 한다. 비상상황시 양들의 울음을 듣고 구하러 가는 것이다.
이때 문의 입구는 하나인데, 문에 서서 양들을 부르면 자기 양들이 따라나와서 풀 먹이러 간다.
오늘 비유에서 강도는 바리새인같이 스스로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고, 양된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오늘 만난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전에 반려견을 기른 적이 있다. 짱미라는 반려견은 네 가족과 함께 살던 요크셔테리어인데, 모든 가족들 중 엄마를 제일 잘 따랐다.
다른 가족들 발소리에는 큰 반응을 안하는데, 엄마의 구둣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꺾어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잘때도 아빠를 쫓아내고 엄마품에서 자려고 했다.
마지막 강아지가 죽게 되었을 때도 풀어져서 죽지 않다가, 엄마가 와서 품에 안아주자 그제서야 숨을 거두었다.
그 강아지는 엄마가 자신을 지켜주고 챙겨주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생각했던것 같다.
우리는 어떨까. 주님을 구원자로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모시고 살고 사랑하고 있었을까.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한명한명의 존재를 아시고 쓸것을 채우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란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주시는 교육은 세상의 음성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양의 삶을 살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진리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향해 다가가지 못한다.
거짓 세상의 말들, 이것이면 해낼 수 있다는 수많은 유혹에서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삶에서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양들처럼 주인이 아닌 강도와 절도의 음성은 따라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분별도 중요하고 따라갈지 말지 선택하는 것도 양에게 달려있다.
세상에서 진리라 여겨지는 수많은 것들을 뿌리치는 영적인 신앙을 갖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그것을 알아보자.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해보자 하는 것이 있었다.
사역이 전환되고 말씀묵상이 오전에서 오후로 밀려났다. 점심먹고 피곤할때 오후에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을 오전으로 하자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나오는 수많은 유혹들을 뿌리치면서 참된 목소리를 따라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말씀을 보며, 굉장히 많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목소리를 당연하게 배척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강아지가 엄마와 많이 붙어있어 엄마를 느끼고 알 수 있던 것처럼, 주님과 자주 붙어있어 깊은 관계를 느껴야 할 것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예수님과의 시간을 바라면서 돈독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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