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13 금요시선
홍순영목사님
마 20. 1-16
제목: 이해를 넘은 하나님의 은혜
<요약>
새벽에 출근하든 저녁에 출근하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1 데나리온. 주인의 시선으로는 한 가족의 삶을 살리는 한 데나리온이지만, 일꾼의 시선으론 나의 공로와 노력보다도 못한 1 데나리온이다. 우리가 공로의식이나 죄책감이 아닌 주님의 구원의 기적을 받아들이길 소망한다.
<본문>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설교>
본문 전에는 부자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결론은 부자들은 천국가기 어려워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라 한다.
그러자 부자청년은 떠나갔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갔는데, 우리가 모든것을 버렸으니 무엇을 얻나이까 라고 한다.
본문 후에는 세배대의 어머니가 한명은 우편에 한명은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을 생각해봄직 하다.
12시에 3시에 6시에 9시에 11시에 나간 주인. 모두를 일꾼으로 받고 모두 임금을 주었다.
이걸 그림으로 그린 그림이 있는데, 앞에 있는 사람들은 분노하고, 두번째는 수군거리며, 세번째는 엎드려있다.
오늘 여러 관점에서 설명해보려 한다.
첫번째로 주인의 관점이다.
포도수확시기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12시는 새벽 6시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노동시간은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이때 품꾼은 주인이 모집하러 간다.
이때 품꾼은 에르가테스 라는 품꾼으로, 장기고용으로 집과 식사를 제공받는 품꾼과 하루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중에 후자였다.
그래서 오늘 못먹으면 죽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인을 보내는 것이 아니고 직접 찾으러 나왔다. 오늘날의 인력사무소와 비슷한 모습. 몸상태와 체격상태 등을 확인하고, 시간이 늦을때까지 남아있단 것은 몸이 약하거나 불편하거나 소외된 것이란 것이다.
7절을 보면 품꾼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찌보면 부족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나도 사역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결혼 전에는 49kg이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많이 마르니 좋은 일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만 일한 경우도 많았다.
원해서 그리 된 것도 아닌데, 많이 서운하고 작아진 것 같았다.
우리도 그런 불편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까.
그런데 오늘 주목할 부분은, 포도원 주인이 한시간 남기고 나갔다는 것이다. 준비하고 교육하고 이동 철수하는 시간 생각하면 한시간은 뭐 의미없지 않나 싶다. 그런 상황들을 알지만, 본인이 직접 내려가서 품꾼으로 고용한 것은 포도원 주인의 의도와 마음과 중심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논리로는 분명 잘못갔다 성장할 수 없다 라는 말이 들릴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경영한다면 혹할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사도들이 가르치고 기도했다. 특히 45절에는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필요와 부족함이 보인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의 것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영향력이 흘러가게 된다. 세상으로 가득했던 그 안에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섬김을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일꾼의 관점이다.
당시에는 보통 늦게 온 순서대로 페이를 줬다고 한다. 아마 그걸 아는 유대인들은 5시에 온 사람이 1 데나리온 준 것을 들고 쎄했을 것이다. 3시까진 그렇다 치자. 늦었으니.
그런데 12시, 9시, 심지어 6시 새벽반도 똑같이 받았다.
그런 것을 보면, 굉장히 의아할 수 밖에 없다.
나만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저사람이 이상한 혜택 받은것도 당연히 의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공로의식이다.
이 공로의식은 비교의식으로 이어지고, 우리 자신을 망가뜨리게 된다.
청소년부 8년 정도 사역했을때, 청소년들이 확실히 어두워졌다는 것이 보였다. 학업적 스트레스도 있지만, 이런 비교의식이 있기 때문인것 같다.
누군가가 높아지면 누군가가 낮아지는데 그 가치를 밖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공로의식과 비교의식에 많이 젖어들어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절대적 의미를 잘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9시든 12시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포도원 주인이 나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그 은혜를 전혀 잊지 말고 자신들의 공로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세배대의 아들들을 생각해보자. 내 자녀들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하며 합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다.
본문 16절처럼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합당한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그 은혜를 세워야 하는 것이다.
14절의 주님은 다른 시점으로 주신다. 온것 자체가 목적이고 섬김 자체가 목적이가. 우린 다른 것을 위해 섬기는데 주님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오늘 본문에 삯은 1 데나리온이다. 이게 참 낮은 금액이라 천국의 비유에 안맞지 않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품꾼들에게 1 데나리온은 하루치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값이다.
어느 누구도 생명을 합당한 값으로 치루지 못했다고 말할 순 없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감당하지 못할 은혜와 섬김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섬김과 사랑을 지속하는 우리의 24년과 25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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