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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주일 4부 예배 말씀 기록_241208

설교말씀 모아/Dongan 주일 및 기타예배

by Choorysostom 2024. 12. 31. 15:24

본문

241208 주일 4부예배
김형준 목사님
여호수아 1:1-9
모세가 죽은 후에

 

<요약>

여호수아서는 모세가 죽은 후에,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로 시작한다. 여호수아는 지도자 모세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그는 첫째로 혼란한 시절,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인생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박사 백성의 정체성을 찾았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적 삶에서 하나님 백성의 사명을 사는 삶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

우리도 나라도 혼란한 시기, 말씀으로 하나님 앞아 나아가길 소망한다.


<본문>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설교>
 코로나를 거치며 많은 지체들이 교회를 떠나고 힘든 일들을 겪었으나 그 자리를 지켜준 찬양대와 찬양팀이 감사합니다.
자주 오고 싶으나 여러 가지 건강 등의 부분이 여의치 못해 못만나 안타깝습니다.
빈자리를 볼 때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땅에 청년들이 말씀이 힘이되어 살아가야 하는데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성경을 읽다가 재밌는걸 발견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후에 라고 나왔는데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고 시작한다.
모세가 죽은 이후에는 가장 척박한 때였다. 40년의 광야생활이 모세와 함께 죽은 것이다.
반면 사사기는 가나안 땅 점령 후 복된 그 순간에 어떻게 되었나가 나온다.
여호수아는 승리와 성공이라면, 사사기는 어떻게 망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호와이 종 모세가 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리고를 넘어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 남부 북부 동맹을 다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환경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최악의 환경을 복된 환경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여호수아를 봐보자.
한국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 청년의 삶도 그렇다. 하지만 어떤 자세를 갖고가냐에 따라 행복한 일도 불행한 일이 될 수 있고, 불행한 것이 행복한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커밍이라는 사람은 남다른 지식과 기술과 능력과 태도 4가지가 성공을 결정하는데, 이 중 삶의 태도가 93퍼센트라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광야에 내버려진 이스라엘을 이끌고 들어간 여호우아. 그 원리를 나누어 우리와 한국 전체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자.

첫번째로 여호수아는 인생기준을 하나님 말씀에 두었다. 7절에 어디로 가든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후 처음에 두려움에 장막에서 나가지 않았다. 왜 그랬냐면 모세와 자기를 비교할 때 자신은 너무나 나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약함과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라는 약함이 있었다. 불평과 원망이 있는 사람과 마음맞춰 가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게다가 그는 남겨진 일이 있었다. 이미 한번 못건너간 요단강도 건너야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새로운 여리고 성 등이 있다. 이미 가나안땅에는 철기 문명도 들어오고 전차도 있었다.
감당이 안되고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있던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모세가 대단한게 아니라 내가 대단하다고 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따른다면 반드시 이룬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는 그렇게 그 인생의 기초를 군중도 백성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다.
여리고 정벌 시 아간이 은과 금과 외투 한벌을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몰래 훔쳤다.
그룬 것을 보면서, 은과 금은 다 갖고싶은 것이다. 프로포즈도 보통 금반지로 한다. 물론 나는 호두 두알로 단단함 속에 생명이 있는 삶을 하자고 넘어왔지만, 그래도 내심 금이 좋았을거다.
그리고 외투는 무엇일까. 쉽지 않은 광야의 삶, 그리고 전쟁이 많은 삶에는 두터운 외투가 꼭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살지 않으면 우리의 필요에 따라 살고 결국 멸망으로 이르게 된다. 이 외투가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는 형통한 삶을 원한다. 보통은 만사형통으로 이야기를 하며, 넓고 편하고 지름길로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것은 내가 가야할 목적지와 연결된 길인 것이다. 강릉가야하는데 대전가는 길이 넓다고 가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형통할거라고 한다. 시냇가는 그냥 단순한 천이 아니라 고랑같이 물을 흐르게 만든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랑을 파는 일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옳은지 나쁜지에 대해 판단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내가 좋은것과 싫은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이후에는 재밌냐, 재미없느냐가 되고, 이제는 내게 유익하냐 아니냐로 다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기중심주의와 물질주의가 들어오고,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다양한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렇게 인생 기준이 흔들릭 나의 욕망에 따라 살게 되었다.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제이다. 여러 문화에 들어가,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없이 문화를 보다 보면 말씀의 기준이 사라지고, 그러니 앞이 걸려서 나가질 못하는 것이다. 젊은이가 기백이 없어지고 살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를 거치며 거의 반토막이 났다.
뭐가 문제인가 생각을 2년간 했다.
그러다 결국 말씀에 서서 사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 옆 환경의 어려움이 보여지지 않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그것이 생각났다. 성을 돈다고 성이 무너지진 않는다. 오히려 머리가 돌아버릴 상황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거지 지식이나 지혜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다시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세워나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요단을 건너자마자 할례를 했다. 솔직히 그렇게 하는게 말도 안된다. 전쟁중에 그렇게 성기의 표피를 자르다니. 말은 안되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갖기 위해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때 우리가 지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체성이 있어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받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가 언제나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삶이 바로 이 정체성이 확립된 것이다.
알린 크레이그박사는 초대교회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을 썼다. 박해중에 어떻게 살아났을지 문서를 찾아본 책이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임을 발견했다.
첫번째로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낙담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두번째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다. 안디옥에서 처움 받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니 잘 받아주었지만, 그 와중에서 침상은 더럽히지 않았다. 
당시에도 참 더러운 것은 많았는데, 로마의 한 폭군이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거지가 없다고. 그렇게 그리스도인은 더러운 짓을 하지 않고 사랑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간 것이다.
그들은 사자의 밥이 될 때에도 약속된 참 소망을 갖고 살았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쾌락이 난무한 시기에, 뭔가 있다고 보이면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 뭔가가 없는데 오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진 않았을까.
교회게 어떻게 이럴까 이런 생각도 하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여러 박해에서도 믿음의 정체성을 가진 것, 그것이 초대교회의 힘이었고, 우리도 박해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정체성이 필요하다.
케네스베 선교사님이란 분이 있다. 하드디스크 하나로 북한에 억류된 최장기간 억류자였다. 낮에는 주체사상 밤에는 벌레들 답답한데 나갈 수 없는 작은 방. 미국 특수부대가 올 것을 기대했으나 그것은 없어 점차 지쳐갈 때 쯤, 주님이 오셨다.
후아유가 아니라 왓아유 라고 물어보신 주님.
그때 내가 북한을 위한 선교사라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이 선교지에 나를 보내셨는데, 내가 관광객으로는 못만나는 이런 특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왜 전하지 못할까. 
이것을 깨닫는 순간 그 안에 찬송이 흐르고 천한 곳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라는 찬양이 떠올랐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상이 바뀐 그사람. 다른 사람들이 예수가 중국사람인지 남한사람인지 묻고, 왜 기쁘냐고 하며, 석방시 아쉬워할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렇게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냈던 그 사람. 우리가 환경은 조직은 참 안바뀌더라도,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을 여기서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하라고 여기에 보내신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한국 교회의 역사를 다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소수를 넘어 박해를 받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의와 희락을 부르짖을 때 그 걸림돌이 디딤돌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부어준 것처럼 살길 원한다.

세번째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갖게 했다.
첫번째로 유월절은 장자의 피의 댓가를 치루고 출애굽한 것을 기념한다. 그리고 우리는 애굽의 노예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지키며 원래 노예였던 그 모습을, 진노의 자녀인 그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주님이 나를 구하신것. 그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절망이 존재하지 않고는 예수를 믿을 수 없다. 내가 죄인임을 알아야 겸손해지고 자랑하지 않게 된다.
두번째로 전적인 은혜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 가장 유명한 존 스토트의 설교에서 처럼, 천국의 사냥개 덕에 구원받은 것이다. 그는 영국에 태어나고 살아서도 아니고, 나를 포기치 않는 하나님의 은혜 덕이라는 것이다.
단지 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도 하나님의 포기치 아니하심이다.
자식도 포기하고 싶을 대가 많다, 은혜도 모르고 항상 달라고만 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싫어하는 모습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바울도 이렇게 아무런 공로 없이 은혜로 감사를 받은 것을 말한다.
세번째로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셨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갖고있는 삶의 자세가 보통 열정이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알아서 가지만 없는 사람은 우물을 기르듯 해야 한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죄인의식과 은햬의식, 사명의식을 심었다. 그렇게 새로운 태도를 만든 것이다.
우리같은 죄인을 은혜로 여기까지 데려오셨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사명이 있는 것이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안흔 사람은 다르다.

화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연변과기대 교수로 자원하여 선교사로 파송된 사람이 있다.
대전 제일교회 장로님으로 국내 성지순례 갈 때 ㄱ자교회 이자인 목자님의 손자인데, 선교사역하다 독일로 가서 암이 발견되었다.
이때 선교사역해야하는데 웬 암이냐 했지만, 그는 오히려 10년 전에 나에게 선교의 기회를 주신게 감사하다고 했다.
세상에 왼전한 삶은 없다.. 광야처럼 외롭고 힌ㅁ들어도 낙담하지 말자. 한번 말슴을 가까이 하여 도전해보자.
말씀으로 그 기초를 세워보자. 
말씀에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지햬와 책망하기에 유익하다. 이 말씀에는 나의 답이 있고, 황무지같은 내 인생에 시냇가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로 살다가 남은 인생을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살자, 그 말씀 속에 정체성에 붙어 성령의 열매를 생각하다,
요즘에는 말슴을 보며 하나님말씀이 맞았구나 하는 이야기름 많이 한다.
나는 30대 초반에 아이를 잃은 적이 있다. 그리고 아내가 세번이나 임종기도를 받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그때 붙들게 말씀 뿐이었다.
희망이 안보인 시기. 다시 힘내보자. 말씀의 힘과 지혜를 믿어보자. 초대교회의 역사를 만들고 섬김이 영광이었던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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