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동안교회 새벽기도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0710

설교말씀 모아/Dongan 새벽

by Choorysostom 2024. 7. 10. 05:21

본문

240710 새벽기도

신동철 목사님

빌 3.17~4.1

 

<요약>

나의 포지션(상황)보다 정체성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 있든 하나님나라의 시민이고, 질서를 부여하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하자.

 

<본문>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설교>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나라라는 것이 지금은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 핵심이지맏, 그 당시의 개념은 통치인 것이다.

렇게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이기에, 바울도 감옥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만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우리 교회 사명을 보면 삶의 현장을 하나님 나라로 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은 다양하다. 국내일수도 있고 해외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시민권자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영향을 많이 끼친게 루터이다. 루터는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면 그것이 성직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런 생각에 영향받아 현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티모시 켈로어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인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모든 혼돈가운데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밭을 정리하는 등 그런 것도 질서를 부여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관점에서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형상에 맞는 일을 하고 이곳에 온 것이다.

 

속인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어디 있든지 그 나라의 사람은 그 나라의 법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속인주의와 반대 개념으로 어디 있든지 우리가 그 나라 사람으로 적용받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다. 어디 있든지 어느 장소에 있든지 누굴 만나든지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만 어떤 환경에서만이 아니라 혼자있을때도 어디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무의식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인 것이 하나님나라의 속인주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끌림 받을 때, 처음에는 모세에게 고마워했으나, 가나안 정탐 이후엔 밤새 통곡할 정도로 에굽시절을 아쉬워하였다.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부름받았으나, 그들을 스스로 메뚜기로 여기는 그들의 마음이 있기에, 상황에 따라 정체성을 내려놓았기에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다.

어제는 어떤 포지션보다 지향이 중요하다 했다. 오늘은 어떤 포지션보다 정체성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에스더에 보면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곳은 크세르크세스라는 사람이 통치하여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 다니엘도 하나님은 판결자라는 그런 말을 쓸 수 없었다. 에스겔도 바빌론에 포로로 들어와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디. 25살에 견습제사장이 되고 30살에 정식 제사장이 되어야하나, 그 5년간 그발강가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켰다. 에스델도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라 소개할 정도로, 그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정체성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 상황윽 만들어간다. 내가 어디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찬송가 448장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내가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이기에 이곳에 서있다. 현실을 보면 암담한 소식들 뿐이지만, 우리의 삶이 하나넴 안에 있기에 하루 더 살아갤 수 있다.

그래서 4.1.절까지 오늘의 본문이다. 우리의 포지션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이 지배하는 삶. 우리가 오늘 시작하는 하루가 평소와 똑같을 확률이 99%이다. 그래서 스크류테이프의 편지에서 예배와 기도를 해도 평소와 똑같이 보이게 만들라고 말한다. 그럴 정도로 바뀌지 않는 현실은 우리를 낙담하게 한다.

하지만 바뀐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바뀌었기에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착하고 말 안듣는 사람이었다  교회는 잘 가서 설교는 잘 들었지만, 잘 듣고 자기 뜻대로 다시 살았다. 전도사님의 말씀을 한귀로 듣고 항귀로 흘리며 살아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도사님의 노력,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메시지만큼은 기억이 난다. 그 설교자와 나를 케어했던 그 사랑 덕분에 바뀔 수 있었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지금의 나의 근원이 되었다.

이렇게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정체성을 찾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