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5 새벽기도
황동규 목사님
열왕기하 12:7-21
<요약>
지금의 신앙을 보시는 하나님. 요아스가 성전을 고쳤어도, 우상을 섬기니, 주께서 고난을 내려주셨다.
우리에게 언제나 많은 여려움들이 오지만, 예전의 신앙과 영광이 아닌,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자.
<본문>
17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설교>
새벽을 지키는 우리에게 영적 은혜와 삶속에서 역사하심을 보길.
요야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정직한 왕이라 칭찬받고 여호와의 성전을 보수하는 일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온다. 어제까지는 긍정적이었으나, 오늘은 참 다르다.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치고, 그의 심복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름 악한 왕도 아니고 성전고치는 업적도 있는데, 갑자기 왜 군데에 공격받고 반역으로 죽은 전개가 나올까.
이런 이야기를 보며, 과거가 아닌 현재에 주목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병행구절인 역대하 24장을 보면 요아스가 결정적으로 바뀌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여호야다의 죽음이었다.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신앙적으로 양육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죽은 후 요아스는 방백들, 즉 일반 백성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18절에 나오는 것 처럼 아세라 목상과 우상 등을 섬기며 죄를 지은 것이다.
여호야다가 있을 때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지만, 그가 떠나고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된 순간, 180도 달라졌다.
하나님은 성전을 고쳤던 요아스만 본 것이 아니다.
현재 요아스를 보시며,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니 아람 왕 하사엘이라는 도구를 통해 심판하셨다.
아람왕 하사엘은 가드라는 평야지역을 공격하게 되고, 이 가드 지역은 방비하는 성읍, 견고한 성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 버린 것을 보면 굉장한 위협이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그 어떤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는다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가드는 64km떨어져 있고 평야에서 산악지ㅐ로 가는 길이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요아스는, 다른 일을 하기보다, 금들을 모았다.
만약 이때에 여호야다가 살아있었다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겠지만, 그 목소리를 들을곳 없는 요아스는 가장 빠른 해결책인 돈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 삶에 닥쳐오는 위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때 나도 그정도 하겠다 이런게 있다면,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에 어떻게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순간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솔로몬은 가장 강대하고 위대한 삶이었지만, 우상숭배로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었따.
우리도 마지막까까지 하나님만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 형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요아스는 심복들의 반역에 죽었다. 그때 밀로궁에 있다고 했는데, 그 밀로궁은 다윗이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다윗왕 성을 이중으로 둘러 싼 성채가 밀로 궁이고, 열왕기에는 주로 왕권의 보호, 견고함을 상징할 때 말하는 성이었다.
그런데, 이런 밀로 궁 안에서,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죽은 것이다.
외부 세력이 아닌 신하들에게, 안전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성에서 죽은 것이다.
이를 보면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지 않을 때, 아무리 다윗 왕에 대한 언약으로 보호받더라도, 무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안전한 밀로의 궁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도 어려울 때 누군가 도와주고 해결해준 적이 있었을 텐데, 그게 세상의 힘과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란걸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도와주었으니 또 누가 도와줄거라 생각하는 것. 그렇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보는 것은 위험한 마음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안전함을 바라보자.
오늘 말씀을 적용하며, 나의 신앙의 자세들을 돌아보게 도이었다.
신앙에도 라떼가 있다. 라떼는 말이야 하는 그 라떼 말이다.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 동기들과 이야기하다 현재 신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때는 수련회 열개씩 다녀도 불평 안했다고 했더니, 나에게 꼰대목사라 했다.
그 이야기를 생각한, 그때 수련회를 다니던 그 마음이 내 안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섬겼던 모습을 알고 계시니 지금은 요만큼만 해도 될거야 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한번 첫 마음을 품어야겠단 생각을 하였다.
하나님은 지금 이순간 우리의 마음을 알아보고 계신다.
물론 이전의 마음들도 잘 알고 시지만, 지금 이순간 더 큰 신앙이 마음으로 나오길 원하신다.
허나 예전의 마음을 갖고만 간다면, 하나님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수도 잇는 것이다.
그런 예전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새벽에 나온 이 시간을 기억하며, 지금의 기도제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자.
하나님은 지금의 모습을 보시며, 마지막 때에 나의 말을 끝까지 지켰으니 의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하실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여정을 끝까지 결단하자.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끝까지 잘하자 라고 고백하자.
00아, 끝까지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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