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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새벽기도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1015

설교말씀 모아/Dongan 새벽

by Choorysostom 2024. 12. 1. 23:42

본문

241015 새벽기도
차명 목사님
다니엘 5:1-12

 

<요약>

우리의 통치자는 누구인가. 다니엘은 강제 이주와 창씨개명 등 많은 우겨쌈을 당한 상황에서, 그 통치자가 왕이 아닌 하나님을 알았기에, 당당한 포로가 되었다.

그 통치를 모르고, 자신이 통치자라 생각하여 하나님의 성물을 술잔으로 쓰는 벨사살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말을 맞았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이신칭의를 받아 환란과 연단중에도 두렵지 않길 소망한다.


<본문>
1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7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8 그 때에 왕의 지혜자가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려 주지 못하는지라
9 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의 얼굴빛이 변하였고 귀족들도 다 놀라니라
10 왕비가 왕과 그 귀족들의 말로 말미암아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하게 하지 말며 얼굴빛을 변할 것도 아니니이다
11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설교>
세계사 살펴보면 신탁통치가 많다. 주로 유엔이 신탁통치를 한다.
우리나라도 그런 기억이 있고, 경국 통치하지 않았다.
나라의 중심에는 국민의 주권도 있다.
헌법 1조 2항에 따라 투표하기도 한다.
우리 삶의 주권은 누구에 있을까?
한번 고민하는 시기가 되길.

다니엘의 핵심을 보자면 하나님의 통치가 어디있는가 이다. 슬픈 유대의 역사에 주님께서 통치하신다는 희망을 잃지 않게한다.
벨사살은 나부니노스라는 바빌론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느부갓네살의 조카일수도 있는데, 아브 라는 단어는 아버지와 삼촌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벨 이라는 이름은 마르둑의 히브리식 표현으로 바알이라도도 한다.
벨사살의 모습은 세상의 모습 같다.
벨사살은 성물을 술잔으로 쓰려 했다.
세상의 사람들은 전쟁으로 전리품을 챙기면 자신의 통치가 있다고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통치 방식에 따라 행동하신다.


오늘 만난 하나님은 상황에 관계없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
다니엘서 초반에는 포로인 다니엘이 오히려 권력자같이 행동한다.
그게 왜 그런지를 생각해보면, 상황보다 그 상황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교회에서도 교회 안팍에 보면 상황에 따라 맞는 세상적인 현실로 인해 마음의 상함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사면초가의 상황처럼 우겨쌈를 당하는 것 같기도 할테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상황을 보고계시고 움직이신다.
어찌보면 악인이 잘되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는 보고계신다. 주님께서는 결국 그 사람들을 심판하신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칭의라는 것이다. 살면서 먼저 배신해보지 않은데, 남탓을 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진실의 빛이 비출때, 벨사살처럼 안색이 변해버린다. 다니엘과 같은 자의 빛이 비출 때 드러난다.
우리는 어떨까. 불의한 마음에 권모술수를 쓰려 하지 않을까.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환란과 연단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신칭의받은 자들의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화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길 원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시선이 가길 원한다.
오늘 말씀을 보며, 참 답답하더라고 이 상황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
어제 숙제처럼, 특새 이틀차 숙제도 있다. 삼손의 이야기인데 성령의 떠남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그 사람도 다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내용이 사사기 16장에 있다.
그 본문을 읽으며 한번 더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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