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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새벽기도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1104

설교말씀 모아/Dongan 새벽

by Choorysostom 2024. 12. 29. 22:52

본문

241104 새벽기도

김영진목사님

골로새서 3:12-17  

 

<요약>

세상의 문화가 침투하고, 유대계 율법을 강요하는 등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웠던 골로새교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과 용납을 실천해야 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을 소망하자.

 

<본문>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설교>
인생의 고민을 다룬 책들이 많다.
그 인생의 고민을 다룬 책이 많은 이유는 인생이 굉장히 복잡하고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아버지든 직업이든 한가지만 생각하고 산다면 그렇게 어렵진 않을텐데, 복잡하게 얽히섥히 섞인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참 어렵다.
안믿는 사람들처럼 자기이익만 보고 살면 참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보니 손해를 보는 것도 많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신앙인은 경계를 걷는 사람이기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경계선의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인생이 힘든 것이다.

지난주에 골로새교회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그들도 우리처럼 힘든 시기를 산 것이다. 그 힘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세상의 문화가 침투한 것이다.
로마의 특징은 다신교이다. 천둥의 신 제우스부터 저승의 신 하데스까지. 그렇게 하나님마저도 여러 신 중 하나의 신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일들이 기독교의 정체성이 섞이는 것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구원의 종교이다.
현실의 삶도 중요하지만 구원을 믿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원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하지만 우리가 종교혼합주의에 빠지면 다른 종교와 똑같이 복만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유대교의 율법을 강요한 것이다. 이런 율법의 강요가 잘못된 것은 갈라디아서 등에도 나오는 부분이다.
이 골로새 교회가 두가지 문제 속에서 바울에게 요청했을 것이다.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바울을 찾아가고 문안인사를 건네며 나온 것이 골로새서의 배경이다.
지난 토요일, 3장 9절과 10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3장 12절은 그 새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12절처럼 긍휼과 자비와 오래참음을 옷입으라고 한다.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9가지 열매에서 본 내용인 것이다.
이 성령의 열매들이 각자 개별적인 열매가 아니다. 그 성령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믿으면 나타나는 현상들인 것이다.
이 골로새 교회에도 비슷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새 삶을 살 때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는 너희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한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세속문화가 침투한 교회는 육신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또 갈 5.18을 보면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놓이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율법 아래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미 말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말하고 있는 것이다.

12절에 있는 것처럼 성령을 따라 살면 세상문화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는 외부의 공격을 받을 때 처음에는 단단하게 뭉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내부로 향하게 되고 서로 예민해지게 된다.
왜 세속문화를 가져오냐 왜 율법을 이야기하냐 그런식으로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대화 몇번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편가르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이 교회공동체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해야 하는데, 주께서 우리를 용서한 것같이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사랑의 띠를 매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세속문화등 율법이든 사랑과 거리가 먼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해야 한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주무시고 계셨던 주님. 거친 풍파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평안함이 주님의 평안함 아닐까.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대제사장 앞에 있을때도 담대하게 이야기했던 평안함이 아닐까.
세상이 다가오고 율법주의가 판치더라도 우리가 평안하길 소망한다.
염려와 걱정만이 교회공동체에 있다면 그것만이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냥 세속적인 평안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정한 평안이 필요한 것이다.

12절에서는 성령의 열매맺는 삶
13절은 용납
14절은 사랑을 더하기
15절인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대로 살기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론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말씀들이 다 예수님같은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정말 힘들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아내와 아이에게 잘하겠다고 다짐해도 힘들고 지치면 그게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나가는 것이 어떨까.
그런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16 17절은 예배하는 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을 즐기는 삶. 그 삶이 예배의 삶이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처럼 나는 부족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처럼 예배자의 삶을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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