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0 새벽기도
이규정목사님
데살로니가후서 3:1-5
<요약>
중보기도는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그렇기에 바울도 소돔에 대해 중보하는 아브라함처럼 성도들의 중보를 요청하고 있다. 첫번째는 다른 지역 선교에 대해, 두 번째는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지도록 부탁한다. 우리도 누군가의 선교로 한국교회가 생겼으니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 전투가 치열하니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도 함께 성장할 것이다.
<본문>
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설교>
중보기도학교를 들은 사람이라면 강의시간에 중보기도는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이라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소돔이 멸망할때 중보하는 아브라함이 있었다. 심판을 막으려는 기도가 아니라, 단지 주님의 사랑을 요청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구약시절 대제사장만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 덕에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중보기도는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오늘의 사도바울도 중보를 요청하고 있다. 어떤 부분을 요청하는지 알아보자.
1절부터 중보를 요청하고 있다. 형제들아 라는 말로, 교역자와 교인의 관계를 넘어서서 그 각별한 사이를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는 아데포이라는 원어로 바울과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영적 책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기도 요청은 자신들의 선교가 스스로의 능력과 지혜로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중보를 요청하고 기도해달라 한 것이다.
대 사도인바울이 이제 들어온 교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달라는 것이다.
이번 암미팀이 7개 국가로 나아갔다. 각 나라의 간증이 있지만, 암미일본팀의 사역이 기억남았다.
한팀은 관계전도팀이고 한팀은 중보기도팀으로 했다고 한다.
여태까진 전체로 나가서 전도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기도팀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전에는 거절이 많았었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거절하는 사람이 현저히 적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기도의 힘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중보기도 요청은 자존심이 상할 부분이 아니다.
저번 중보기도학교에서 입술에 바이러스가 퍼진 채로 강의하였다. 그래서 입술이 낫게 해달라고 중보를 요청했다.
중보는 자존심이 상할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가는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삶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는데, 함께 중보하며 기도할 때 그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겸손하게 기도하여 기도의 능력을 겪길.
사도바울의 기도제목 첫번째는 1절 후반절에 나와있다.
너희가 변화된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 막 개척한 교회에 부탁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누군가의 기도로 변화된 것이니, 함께 변화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선교사가 왔지만, 사실 선교사 혼자 온게 아니다. 각자 파송한 교회와 성도들, 수많은 중보자들이 있던 것이다.
나의 모교회는 경남에 있다. 그 의자에는 호조교회라는 글이 써져있었는데, 알고보니 데이비드 선교사님이 부산에 들렀다 회룡으로 돌아가던 중 폐렴에 걸려 사망하시자, 호조 장로교회 라는 곳에서 그 뜻을 기리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와 선교로 태어난 믿음들이다.
바울의 두번째 기도제목은 2절에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달라는 것이다.
바울도 악한 세력에 의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빨리 나오게 되었다. 그런것 처럼 악한 영적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에도 우는 마귀가 먹을 것을 찾는다고 나온다. 이렇게 악한 세력들이 많은 세상. 이런 세상에서 이런 중보기도가 필요한 것이었다.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악한 사람들은 믿음이 없기에 복음을 방해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도바울도 믿음이 없던 적에 박해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그들이 믿음을 갖도록 기도한 것이다.
그래서 그 기도의 결과는 미쁘신, 믿음직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킬 것에 확신하신다는 것이다.
즉 이 중보기도의 결과는 주님이 우릴 지키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만났을 때 어찌하여 무서워하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이야기하고 바다를 꾸짖으셨다.
우리의 삶에 믿음이 흔들리는 현상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미쁘신 분이시다.
중보기도를 요청한 바울만이 아니라 중보기도를 한 교인들도 믿음이 굳건해 진다는 것이다. 기도의 힘을 믿어보자.
끝으로 4절과 5절에 이런 현상과 환경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자격없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도와주신 것으로 증명된다. 여기서 인도한다든 것은 머물러있다는 것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믿음에는 핍박이 따른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에 있자.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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