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2 주일4부예배
추성훈목사님
나를 살리는 명령(2)-'큰나라'로 살기
신명기 4: 7-11
<요약>
하나님을 아는, 경험하는 기초 위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의로운 규레와 법도를 세우며, 세 번째로 대대로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큰 나라가 되자.
<본문>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설교>
지난주에는 준행이란 키워드로 설교를 전했다.
그러고 오늘은 신명기 말씀으로 이야기한다.
항상 순종하지 못했던, 가나안을 보고 악평을 했던 이스라엘을 40년간 보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준행하라고 한 모세의 설교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40년간 경험하며, 그것을 확인시킨 선포를 하는 것이 신명기의 말씀이다.
우리도 참 어려운 세상에서 믿음의 한걸음 딛길 힘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한걸음으로 세상이 우리에게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며 큰 나라가 되는 은혜를 보여주실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기는 것을 보는 세상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비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기초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안다라는 히브리어 야다는 관계를 맺다, 경험과 배움으로 아는 것이란 뜻이다.
하나님이 천상에서 가만히 보는 것이 아니라, 친히 계획하시고 보는 분이시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될 걋이다.
영원토록 사랑하는 그 목적을 위해 움직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할 것이다.
호세아 6.3.의 힘써 알자 새벽빛같이 임하시는 여호와를 알자고 한다. 때로는 백성들을 사랑하기에 찢기도 하고 혼내시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임을 계속 말씀하신다.
호 6.1.에 우리를 치셨으나 낫게하실 것이요 찢으셨으나 합치실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하나님이 죄를 심판한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메꾸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나? 원망만 하고 있지 않나?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해 몸부림치자. 내 이성과 지식과 사고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어보자.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분, 보이는 만큼 역사하시는 분이다. 밝은 빛과 같이 어김없이 떠오르는 분, 늦은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쳇바퀴처럼 돌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전능과 초월을 제한하며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한다.
오늘 본문에선 이스라엘을 큰 나라로 부른다. 그 이유는 첫째로 기도할 때 가까이 얻음이다.
우리는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기본적으로 대화의 형식이다. 내가 말하면 하나님이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가 듣는 것. 그것이 기도이다.
아무나 하는 기도를 듣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도 규칙과 법을 지켜두셨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있는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다.
구약시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피를 뿌리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메시야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단번에 죽으심으로 피의 제사가 필요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중보자 되어주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를 허락해 주신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얻은 것이다. 중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혜택을 얻은 것이다.
이런 호의를 가볍게 생각할 때 그 감격이 식어지는 것이다. 이 특권이 변질될 때 하나님은 소원들어주시는 분이 되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례하게 권리를 주장한다면 부모는 그 관계를 다시 교육한다.
자녀는 그 당연한 권리가 잘못된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무례하지 않는 사랑과 존경의 태도로 다시 바꿔서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대화하는건 하나님과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 나를 더 잘알아서 나를 이끄신다.
우리의 기도에 가까이 가시는다는 것이 정말 큰나라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신다는 그 사실에 감사가 회복되길.
두번째 이스라엘이 큰 나라인 이유는 규례와 법도가 서있는 곳이라 그렇다.
who에서 법치국가 순위를 매겼는데, 우리나라는 19위를 했다. 일상적으로 인식되는 항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부개방성 형사 민사 시스템들을 가지고 평가하는데, 덴마크가 1위였다.
나라의 법이 잘 작동될수록 건강하고 질서있다고 한다. 이유와 상황에 따라 반대되면 안되는 것이다.
정치소득과 상관없이 일정할 때 큰나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것이 큰나라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법이 공의로울 때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의가 이뤄진다.
출 2 3장처럼 다수나 소수, 부와 가난 상관없이 같은 송사를 하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주님, 언약을 세우신 주님, 그 공의가 그 가운데서도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법을 누가 줄 수 있을까.
나에게 얼마나 헌신적이고 예물을 주는지에 따라 다르다.
이렇게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큰나라가 되도록 하신다. 이게 우리의 존재가치이다.
그리고 그 칭호가 공식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법을 지켜야 한다.
신 4. 9에서 지킬 것이 세가지가 있다.
오직 스스로 삼가고 행하라고 한다. 말씀은 읽는게 아니라 지키는거다. 샤마르 라는 단어는 지키다 보호하다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누가 하는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갔을때 다니엘이 3년간 바빌론을 공부한다.
그는 이방문화와 학문을 배척하지 않았다. 그 수준을 알았기에 월등히 뛰어났던 것이다.
그럼 그 다니엘이 이 학문과 지식으로 뭘했을까. 아첨하고 노력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높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진정한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찾아왔다.
밤이고 낮이고 찾아왔다.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작지만 주님은 크니 그것을 인정하고 나가자는걸. 그렇게 뜻을 정하며 살았다.
무작정 상황과 환경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알아야 그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 맏음이 좋아지는게 아니다.
기적이 있으면 믿음이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 수 있는 분이시지만 기적보다 중요한건 그 기적이 하나님의 호의이니 그 기적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더 은혜이다.
사람은 기적이 있어도 잊는 사람이다. 광야와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랬다.
여전히 작은 우리를 사랑하고 관심보이시는 하나님을 감사하고 인정하는 것이 성숙된 신앙이다.
세번째로 대대로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이 좋더라도 신앙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끊어진다.
이스라엘에 초막절이 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 주위에서 초막을 짓고 1주정도 생활한다. 그러면서 부모자식간에 대화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그 생활로 지키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을 얻는 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건 우리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다음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다.
우리의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십자가의 기쁨과 힘을 주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오직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말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
이를 내년에 적용될 조직개편에 적용하고 싶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켜나갈 때, 하나님이 놀라운 비전를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할 일을 잊지 말라 하고 기도하자는 것이다.
같이 기도하자. 정말 같이 기도하자.
하나님이 기도할때 가까이 오실텐데, 기도를 안하면 하나님이 오실까. 하나님이 가까이 오자 하실 때까지 기도하자. 큰 나라라는 칭호에 맞지 않을지라고, 큰나라가 되도록 주님과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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