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7 금요 시선기도회
한상민목사님
히 10. 19-25
하나님께 나아가자
<요약>
우리는 죄로 인해 어그러지고 찌그러졌지만, 주님의 보혈로 화목해진 우리, 하나님께 숨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보자.
코로나 시기도 지나간 우리는 새로운 시기에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살아가자.
<본문>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설교>
오늘 말씀은 두부분으로 나눠진다. 이렇게 살라는 것과 그 이유.
히브리서의 저자는 안나와있지만 대상은 명확하다.
하면 좋고 아님 말고식의 권면이 아니라 마땅히 지키라는 권면이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 또한 지켜야 할 것을 알 것이다.
19절 20절에 보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라는 찬양처럼 익숙할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지성소가 있었고, 이곳은 백성은 물론 제사장조차 쉽게 못들어가는 곳이었다. 1년에 한번 갈 수 있는 그곳. 부정한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나가는 곳. 그곳이 휘장을 찢은 예수의 보혈로 정결해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다.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갈때도 피를 바르고 들어갔다. 출 29장에 보면 피를 오른 귀 엄지손가락 발가락에 뭍히고 뿌리고 들어갔다.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처럼 복잡한 제의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스도로 모든 죄가 사함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을 찢으셨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마 27.51절에는 휘장이 찢어지는 모습이 나온다. 예수의 죽음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선 이것을 휘장에 비유한다.
21절에 예수님이 제사장이심을 뜻하는 말씀이 나온다. 죄된 우리와 하나님을 이어주는 화목제물.
행 4장 12절에는 예수 말고는 다른 구원의 이름이 없다 한다. 오직 예수님만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길은 열렸지만, 그 길을 갈 결단은 우리에게 있다. 주님께선 그 결단을 우리에게 주셨다.
22절에 확고한 믿음으로 참된 마음으로 나아가라 한다. 우린 어떻게 그렇게 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죄인이란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죄짓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숨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강하면서도 하나님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22절에 보면 맑은 물로 인간을 씻었다고 하신다. 이것은 진짜 씻은 것이 아니라, 보혈로 우리가 정결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께 숨지 말고 화목하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죄로 인해 어그러진채로 있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런 십자가를 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확고한 믿음으로, 선행과 물질이 아닌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그 믿음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의로운거 하나 없지만 의롭다 하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권태롭고 낮아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일상에 파묻혀 살다보면 때로는 믿음이 약해질 것이다.
코로나와 비대면을 보며 우리는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를 보면 신앙의 박해를 받는 시기였다. 그리고 신앙의 박해를 벗어나는 길은 로마가 공인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림예수가 늦어지는 그 순간 때문에 내부적으로 더 흔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다시 믿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는 외부적 위험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득권적인 세력을 영위하며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수도 있다. 이때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을 다시 믿어야 할 것이다.
이 히브리서 저자는 23절에 주님은 신실한 분이시니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각자의 약속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오래걸리면서 계속 기도하는 것은 아마 힘들어 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오래 걸리는 것에 부화뇌동하며 흔들리지 않은가?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실 분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라는 찬양가사가 있다.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거 같은 팬데믹. 줌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럼에도 시간을 떼어 1시 반에 4부예배를 드리고 3시 반에 부서모임을 했던 이유가 우리가 그렇게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나갈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실 거라고 굳게 믿으며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세번째로 믿음을 통해 사랑하자고 한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은 서로 뗄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 없이 사랑을 볼 수 있을까.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그 마중물이 있어야 우리가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라는 비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서로 사랑할 때에 그것이 이뤄진다.
마가복음 12장 33절에 보면 종말의 때와 시기를 알 수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가까워오는 것은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우왕좌왕했던 초대교회 성도들. 우리도 그러지 않을까. 하나님 뜻을 분별하기보다 좌우로 흔들리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코로나 이후 한두달은 빨리 끝날거라는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2년 3년 되자 평생 마스크 쓰고 사는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엔데믹이 된 이후, 공동체성이 희미해졌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청년부는 개편의 시기를 앞두며, 어떤 청년들은 새로운 공동체에 참여가 두렵다고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것이 청년부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두려움에서 끝내지 말고, 코로나 시대에도 버텼던 이유를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버티길 바란다.
베드로전서에는 종말에도 기도하며 사랑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한다.
새로운 조직개편의 시기, 교류가 없던 공동체에서 셀모임을 잘 할 수 있을까, 잘 될 수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지만, 하나님의 마중물되는 사랑으로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개편의 1년과 청년부를 감당하고 섬김을 감당하며 보내는 이 시간들. 이 시기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려놓고 잠잠히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가자. 주님께서 이미 행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예비하신 길을 행하시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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