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3 주일4부예배
추성훈목사님
제목: 기억하는 신앙2-길갈에 세운 열두 돌
여호수아 4:19~24
<요약>
요단강을 건너게하셔서 태어나기 전인 홍해도 기억하게 하신 주님. 마지막 한명의 발걸음까지 지키시는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변치않는 돌을 세웠다.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 사울과 압살롬과는 달리,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게 하는 길갈의 열두 돌. 우리에게 그런 길갈의 돌이 무엇인지 기억해보자.
<본문>
19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말씀>
저번 시간에는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였다. 언덕이 넘칠 정도로 요단강이 범람하는 시기, 그 시기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여실히 보여주셨다.
그것도 단순히 혼자 하신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과 함께 이뤄가셨다.
이 사건은 광야 2세대에게는 엄청난 신비였을 것이다. 갈라진 강의 물줄기와 중력을 이긴 물을 보며 감탄했을 것이다.
이제 오늘, 요단강을 건넜다. 40년 광야의 마침표를 찍고 새 땅에 들어섰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돌 열둘을 택하여 두라.
제사장들의 발 밑에 돌을 두라 하셨는데, 그곳은 물가에 잠겼던 그 제사장들의 위치였다.
그곳에서 돌을 가져다 유숙할 그 곳에 두라고 하신 것이다,
총 6가지 단계로 분리해보자.
첫번째로 각 지파마다 12사람을 택한다.
두번째 여호와의 궤를 메고 요단 물가를 밟고 멈춰서라.
세번째 백성들이 모두 건널 때 까지 제사장들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네번째 백성들이 모두 건너고 나면 지파의 대표 12사람이 돌 하나씩을 가져와서 어깨애 메고 가라.
다섯번째 맨 마지막에 요단강을 건너라.
여섯번째 그 돌을 유숙할 곳에 두라.
하나님이 왜 여호수아에게 돌을 가져와서 건너라고 했을까?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이 성경의 특징으로 이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7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념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21~22절을 보면 또 비슷한 구절이 반복된다.
이 돌을 통해 요단을 건넌 기념이 되게 하려 하신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먼곳에 가면 현지에 가서 사오는게 있다. 바로 마그넷 기념품이다.
그걸 냉장고에 하나씩 붙이는 재미로 산다.
가끔 그것을 보면 기억이 난다. 이렇게 우리는 기념품을 보관하고 선물하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기억하고 기념하려 한다.
이게 하나님을 닮은 것도 같다.
하나님도 이 요단강 건넌 사건을 기억하고 싶어하신다.
23절에 보면 요단을 건너게 하심이 홍해를 건너게 하심과 같다고 한다. 그걸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신 것이다.
요단강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권능으로 일어난 일이다.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는 홍해사건을 본 적이 없어 범람중인 요단을 보고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기적을 한번 보고는 우연이라고 한다. 우연은 한번쯤 기적같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걸 알고, 홍해에 이어 요단도 가르셨다.
광야 2세대가 갈라진 마른 요단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하나님을 보며 홍해를 가른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을까.
이 사건을 통해 피조세계의 통치자도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제사장들이 강을 건너고 육지를 밟자 요단강은 처음처럼 돌아왔다. 하나님이 처음 가는 길을 먼저 제사장들을 통해 밟으시고, 요단강에 도달하자 모든 백성이 지나갈때까지 서계셨다.
모든 백성이 건널 때까지 움직이지 않던 제사장들. 그리고 제사장이 건너자 다시 흐른 요단강.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엿보인다.
마지막 한명이 건널 때 까지 요단강을 밟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그 지극한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이뤄질 것이다.
때로는 우리를 인도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마지막 한 발자국까지 주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
우리의 발자국 하나하나 다 주님이 보고계신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의 삶에 우연으로 역사하신 적이 없다. 우리의 필요를 가장 적절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에 요단강같은 막막함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그 말씀을 듣고 신뢰하는 자에게 자신의 권능을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신뢰하면 된다. 포기하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두번 세번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꽃길에서 넘어지더라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신뢰하자.
20절에 여호수아는 돌을 가져와서 세웠다.
성경에서 돌은 보통 무거움이나 견고함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중요한 사건은 돌에 새겼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물을 돌로 기념하게 하신 것이다.
21절 22절에서 본 바와 같이 후손들의 질문에도 기념비를 보며 말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강물을 갈라 마른 땅으로 가게 하신 하나님. 할아버지 시절에도 홍해를 가르셨는데 아버지 시대에도 요단을 가르신 하나님.
그 신앙의 유산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기념비적인 시간이 있을까.
신앙의 삶을 살아 갈 때 나를 위해 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그 삶의 시간이 있을까.
아내가 1년에 한번 어떤 분에게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 학창시절에 알던 친구가, 세례를 받은 그 날에 전화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자신이 세례를 받은 그 날을 기념한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에 데려가준 그 고마움을 전화로 인사한다고 한다.
현재 한 교회의 집사로 신실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중요한건 모든 것이 은혜라는 그 찬양처럼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괴롭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때 다시 회복한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의 돌이 어찌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를 기억하게 된다.
성경에 가치를 잘못든 사람 대표 2명은 사울과 압살롬이다.
다윗의 장인 사울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귀중하게 여겼다. 아말렉을 없애지 않고 가치있는 짐승들은 남겨두고 갈멜에 가서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내려갔다고 한다.
또한 압살롬은 자신의 자랑인 긴 머리가 나무에 걸려 죽게 되었다. 그가 살았을 때는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만들었다고 삼하 18.18에 나와있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사울과 압살롬. 역사는 어찌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살았다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다고 기억할까.
우리의 모든 삶이 은혜였다면 하나님이 하셨음을 기억할 것이다. 부끄러운 시간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가 기억난다면 그 때를 기념하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시간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 없이 우리를 기억하신다.
지금의 시간도 하루만 지나면 기념이 된다.
2022년 4월 17일 첫 예배가 기억난다. 그때의 공기와 분위기와 시선들이 기억난다.
그때를 언제나 기억하며 갈 것이다.
요단강을 파죽지세로 건너갈 것 같았던 이스라엘.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앞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기념하라 하신다.
우리가 잊고있진 않을까? 해야할일이 많고 쳐내야 할게 많아 분주하지 않은가?
우리가 함께 걸어갔던 사실을 기억하고 인정하자.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고 안전하게 걸어가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
이제 우리가 다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걸어가며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세워가자.
그때 우리가 삶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통해 기억하고 하나님을 증거하자.
우리의 한주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의 시간에 작은 돌을 세워 하나님의 기념비로 세워가자.
그렇게 풍성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며 이뤄가자.
계속될 그 역사를 기억하며, 나의 자랑보다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며 송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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