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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주일 4부 예배 말씀 기록_241110

설교말씀 모아/Dongan 주일 및 기타예배

by Choorysostom 2024. 12. 29. 23:29

본문

241110 주일4부예배
추성훈 목사님
여호수아 5장 1-9
기억하는 순간-수치를 떠나가게 하신다

 

<요약>

남들이 처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요단의 기적으로 이방민족의 시선을 가리시며, 주님은 할례를 명령하셨다. 두려움을 이기고 순종하며, 노예생활과 광야의 수치심을 이겨내는 그 할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우리도 우리 삶의 광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누구인지 상기하여 정체성을 회복해 나가자.

 

<본문>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설교>

기념비적인 사건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인생을 10년단위로만 봐도 크고 작은일이 있는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희로애락을 누리는 시간, 우리는 추억 저편에 숨겼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셨다.
한번 하나님의 받은 복을 세어보고 감사할 수 있는 풍성한 시기가 되길 바란다.

당시 요단강을 건넌 사건이 요단강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요즘이야 방구석에서 지구 반대편 본대도, 그때는 이건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었다.
평생 못들은 소식을 들었다. 수십만명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넜다. 여호와께서 요단강 물을 말렸다.
이들에게는 마음이 녹다 라고 표현될 정도로 두려운 시기였다.
아비규환인 가나안. 그런 상황을 인지했으니 오히려 기세를 몰아 가는게 나을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상한 부탁을 하신다. 할례를 하라고 한다. 성경적으로는 하나님께 택한받은 백성이 하는 의식이고 태어난 지 8일만에 그렇긴 하다.
그런데 그게 좋은건 맞는데, 지금?!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다시 할례를 행하라는 본문이 있다.
그 이유가 4~5절에 나오는데 이집트에서 나오고 한세대가 지나 다들 할례를 못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할례를 하긴 했다. 그런데 다른나라의 할례는 성인으로 인증하는 표식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할례난 언약백성이라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언약백성이 아니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할례를 시킨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로 전쟁보다 절차가 더 중요하다. 전쟁에서는 지휘체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휘체계는 절차와 질서에서 나온다. 
그런데 참 이스라엘이 요단강 건너와서 한게 돌 열두개 갖다놓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쟁 전에 절차를 확립하려 하신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함께한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광야에서의 전쟁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략으로 된 것이 아니다. 출애굽기 17장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보듯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순종할 때 이기는 것이었다.
우리가 부딪혀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은 많지 않다. 우리는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는 것이다.
40일간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오직 말씀으로 이겨내섰다.
마귀의 전략은 딴게 아니다. 어떻게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연구한다. 그래서 물질과 명예 등 화려하고 좋은 것들로 유혹한다.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눈길을 준다면 자연스레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 둘 다 섬길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고 하는데도, 난 할 수 있다면서 우겨본다.
마 6.24에 분명이 나온다.
마귀는 우리가 무엇에 약한지 다 알고 시험한다.
멀어지지 않으려면 다른게 없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 말씀이 내 안에 장착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 절차와 질서에 순종하면 우리의 대장과 지휘관이 되신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는다.
신앙생활은 이상하고 기이하다. 내가 싸우는데 하나님이 이긴다. 이땅에서 질 전쟁이 없다.

우리는 순종의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순종은 기본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연습과 연단으로 나온다.
순종과 비슷한 단어가 경건이다. 하나님을 닮고 그 성품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렇게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험께할 때 그 경건의 훈련을 받는 것이다.

두번째로 하나님은 수치를 떠나가게 하시기 위해 할례를 행하셨다.
길갈은 굴리다란 뜻이다. 여기서 이 수치를 떠나가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수치였을까. 바로 애굽에서의 수치였다. 430년간 노예로 살며 겪은 수치와 고통. 그것을 청산한게 이 할례이다.
또한 광야생활을 하며 겪은 수치이다. 애굽에서 나와 황량한 광야를 40년간 똑같이 보낸것이다.
만약 애굽일보가 있다면 이스라엘이 아직도 광야라고 기사가 나왔을 것이다. 그들은 비웃고 비아냥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집트 430년과 광야 40년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 것이다.
이집트 사람이 뭐라하든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긴 광야의 시간이 끝나도, 하나님은 바로 무언갈 시작하시기보다,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아픔과 수치를 굴러내리는 작업을 하신다. 우리가 힘들었어도, 그 시간이 비웃음의 시간이었어도, 그 수치를 내리는 시기일 수 있다.
우리가 자꾸 그 수치의 시간이 생각나도, 앞으로 뚜벅뚜벅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를 언젠가 즐겁게 하실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지 보면 내가 광야를 잘 걷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에게 연습시키시고 뜻이 있는 분이시다. 날 설렁설렁 하지 않고 훈련시키고 하신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손잡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강물도 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오히려 그 시간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누리기를. 그 말씀이 악한 영과 싸우는 힘이 되기를.
하나님만 따라가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나를 멈춰서게 하실 때 잠잠히 따라가고 믿게 하실 것이다.
그 광야를 말씀으로 통과하려 아름다운 가나안을 밟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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