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8 새벽기도
진흥재 목사님
요한복음 11:17-27
<요약>
작은 희망도 사라진 나흘 이후의 방문. 하지만 약할때 구원되시는 하나님은 마르다의 고백을 받아들이셨다. 그렇게 나의 뜻과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을 만나길 소망한다.
<본문>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본문>
어제부터 요한복음 11장을 나누고 있다. 어제 본문에 베다니의 나사로를 만났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버풀던 지역 이름도 베다니였는데, 그곳에 이틀 계셨다.
언어유희지만 예수님은 죽음 가운데 함께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영광을 보여주시려 고통과 핍박이 있는 유대로 돌아갔다.
예수님이 도착하셨을때는 나사로 사후 나흘이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현재와 달리 사흘정도 영혼이 있으니 그 이후에 장례를 시작했다. 그래서 사후 나흘은 완전히 죽고 작은 희망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내 힘으로 아무것도 안되는 순간, 그때가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적합한 때인 것이라는 메시지 아닐까.
우리 아버지도 목회를 하고 계시다. 나도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금식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가 금식할 때 20일정도 금식한적이 있다고 한데,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만큼 기도제목을 간곡히 적어 기도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금식할수록 목소리가 안나오고, 그래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라는 소리밖에 안나왔다고 한다. 그때 내 힘과 의지가 다 빠지고 기도할 때, 그때 기도제목이 다 빠지진 않았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갖고 밀고 들어오신다고 한다.
오늘 말씀도,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이 밀고 들어오는데, 그때 그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는데 나사로가 죽었다. 마르다가 뛰쳐나가 예수님을 영접하며 아쉬운 마음을 토로한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가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순간에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이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런데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를 이야기한다.
유대인은 종말의 때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종말론 신앙을 갖고 있었다. 마르다도 그 고백을 한건데, 지금은 못살아난다는 의미가 숨어있는거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마르다와 닮아있다. 설교와 기도때 아멘 믿는다를 얼마나 하나. 그런데 정말 믿는가?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 그거갖고 나왔는데, 정말로 들어주실까?
살아가다 보면 입술로는 아멘이지만 마음으로는 노멘일 때가 있다.
그렇게 예수님의 고백을 담고 있는 마르다의 말씀이 무엇일까.
25~26절에 나는 나다 라는 에고에이미라는 용법을 사용하시어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종말의 신앙을 뒤집으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그 구원을 임하시는 것이고 설령 몸은 살았어도 그리스도가 없으면 죽은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종말의 현실을 말씀하셨다.
마르다의 믿음은 연약했지만 그렇게 한단계 진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주님의 말씀에 주여 그러하외다라고 하며 아멘의 뜻으로 화답한다.
오늘 이 마르다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 본문에서 발견한 하나님은 약할때 강함되시고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이렇게 힘들 때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순간이다. 고린도 후서 12장 10절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약할때 강함되신다는 고백이 이거 아닐까. 내 힘과 의지가 다 빠진 시기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강함이 이것 아닐까.
오늘의 교훈은 나의 뜻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며 아멘이란 것을 하는 것이다.
오늘의 적용은 나의 뜻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일할때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시간을 말해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실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진심으로 전심으로 아멘을 외치며 하나님이 계신 공간에 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활이요 생명을 말씀하시며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과 회복이 일어난다고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서도 내가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옛날 제국들을 보면 황제가 넓은 땅에 칙령을 내린다. 예전에는 전달이 느려 구석까지 전파되는데 느리게 간다. 하지만 도장의 효력은 칙령 반포시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생각하며, 오늘을 견디기 힘들다면 하늘에서 너희가 살아간다는 칙령이 선포되었고, 하늘과 땅의 간극으로 조금 걸린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게 회복의 은혜를 간구하며 아멘을 선포하시는 모든 동안의 성도들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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