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6 새벽기도
김영진목사님
민수기 14:1-10
<설교 요약>
소리쳐오는 이스라엘의 소리 앞에 싸우지 않고 가만히 엎드린 모세와 아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알고 긍휼히 여겨 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은혜를 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세상을 볼 때, 그 나라와 민족과 세상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품고 긍휼함으로 행동하자.
<본문>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본문 요약 및 해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절망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갖가지 기적과 은혜로 애굽 땅에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원망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연약하여 출애굽의 모든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눈앞에 당면한 작은 어려움에 무너지고 맙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시때때로 고난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를 덮쳐오지만, 매번 쓰러지고 넘어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모세와 아론과 갈렙과 여호수아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절망과 고난 앞에 즉각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옷을 찢으며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리를 선포하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동안의 성도님들께서도 고난에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을 뛰어넘는 멋지고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어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이 굳이 우리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시는게 아니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시는게 너를 여기까지 인도한 나를 믿을 수 있니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나누었다.
그리고 10명의 네거티브반응과 갈렙의 포지티브반응이었다. 우리도 갈렙처럼 되길 기도하자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회중들의 반응과 모세와 아론, 그에 맞선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이다.
우리 말중에 나쁜 소식은 날개가 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살다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스라엘 정탐꾼의 이야기는 금방 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별로 좋지 않게 퍼진 것 같다.
그 소문의 많은 사람들이 모세 앞에 몰려왔다.
백성들이 밤새 통곡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고된 광야생활을 마치면 쉽게 가나안을 손에 넣고 쉴 수 있지 않을까 했나보다. 하지만 거대한 적들이 있다는 것은 절망할만 하다.
그래서 그들은 2~3절에서처럼 해서는 안될 원망의 말을 한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나님께 그 말을 한다.
시키는 대로만 살면 옥숨을 유지하고 밥을 나올 수 있는데,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을것이다. 노예생활을 하고, 고기가마는 아마 일을 해낸 몇몇사람에게만 나왔을 것이다.
지금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만나에는 비할 바가 안되지만, 그 왜곡된 기억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으면 좋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것이다. 광야는 농사도 못짓는 곳이라 생존이 불가능한데, 적어도 1년 이상 산 시점에서 그 은혜를 잊은 것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목마를 때 나온 반석의 물 등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그냥 죽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도전하는 심경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3절과 4절에는 이제 그 절망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죽는 것, 패배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내 처차식이 노예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생존 본능과 처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두려워버린 것이다.
이 본문에서 충격적인 것은 가나안땅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아예 보지도 않은 것이다. 10명은 부정적이긴 해도 과실을 갖고왔는데, 백성은 그것을 보고도 부정한다.
단지 그 땅은 나를 삼키는 땅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비슷하다. 시험에 든 신앙인들은 어려움들이 나에게 닥치고 가족들이 위협을 당할 때 똑같이 절망하고 슬퍼하며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교회에 들인 시간을 아까워하며 교회를 떠나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죄악을 반복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의 모습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의 모습일 수 있다.
겸손하게 그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은 어떤 신앙인일까.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의 모습을 통해서 보자.
5절에 모세와 아론은 회중 앞에 엎드렸다.
왜 그들이 엎드렸을까?
혹시 백성들이 끌어내서 엎드리게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원어를 보니 이 문장의 주어는 모세와 아론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엎드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과 백성들을 중재하려 엎드린 것이다.
이런 장면은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에서도 나온다. 금송아지를 숭배할 때, 하나님이 새로운 민족을 주려고 하셨으나, 모세는 하나님께 엎드리며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다고 말한다.
또 반복되는 상황. 이 상황에서 나는 결코 모세와 아론처럼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백성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엎드리는게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분노하거나 냉랭해지거나 할텐데, 모세는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모세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질 수 있었던 것일까. 모세와 아론은 어떤 마음으로 엎드러진 것인가.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은 문제해결에 있어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발하는 상황. 진정이 아닌 비극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들이 숙청당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울 수 있던 상황.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 분노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모세가 긍휼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 1~2년의 광야생활동안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이 진심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지도자로서 보고있었을 것이다.
그 백성들이 실제로 광야생활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지만 마냥 쉽지많은 않은 상황이었을 상황.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신발이 닳지 않는 것 등 이 있었더라도, 그 생활이 쉽진 않았을것이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돌아가자마자 들리는 소식이 강력한 적들이라니. 전쟁으로 폐하는 소식을 들었다니. 그들이 실망하고 슬퍼했을 것이고 모세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엎드렸던 것이다.
이 모세와 아론의 엎드림을 통해 신앙인의 마음가짐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그 신앙인의 마음은 긍휼한 마음이었다.
이 여호수아와 갈렙도 피끓는 외침을 하였다. 그 마음 속에는 긍훌한 마음이 있었다. 그곳이 거주민을 삼키는 곳이란 백성들의 말에 긍휼한 마음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있던 것이다.
이 긍휼함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긍휼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고 하나 그 마음이 끝이 아니었다.
한번에 한 사람이란 책에는 긍휼은 동정에 대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한다. 긍휼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병든자를 긍휼이 여기는게 끝이 아니라 고치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친 것이다. 그 피끓는 마음을 외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자들은 기도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우리 교회에서 공동기도를 할 때 세번 외치는 것이 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단순히 불쌍히 여기고 끝내달란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와 가족과 나라와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살리시고 회복케 하시기를 바라고 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이 기도는 사실 긍휼이 여거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8복에 대한 말씀이 있다. 거기서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께 긍휼함을 받으려면 우리도 긍휼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 세상과 나라와 민족을 우리가 먼저 긍휼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똑같이 다투었다면 절대 살아갈 수 없고 잘 마무리되더라도 망가졌을 것이다. 긍휼히 여김을 베푸시고 나간 것이다. 이런 성경의 말씀을 잘 기억하자. 이 세상을 긍휼히 여김을 기도하고 마음갖고 긍흉함을 베풀며 나아가도록 하자. 우리가 먼저 베풀며 긍휼함을 여기길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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