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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수요영성집회 말씀 기록_240501

설교말씀 모아/Dongan 주일 및 기타예배

by Choorysostom 2024. 5. 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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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수요영성집회

느 8 1~6
장재운목사님

요약: 포로의 고통을 이겨낸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중심임을 다시 기억하고, 후대에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모두 말씀앞에 모였다.
코로나의 고통을 이겨낸 우리, 하나님의 중심을 다시 기억하고,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말씀앞에 모이자.
코로나시기, 우리에게 최선이 온라인, 한명, 두명, 좌석 10%와 같이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는 것이, 우리도 귀찮음으로가 아닌 최선의 정성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예배를 드리자.


인생을 절반정도 산 지금, 사람들의 공통점을 느꼈다.
사람들은 성장하는 시기와 단계가 있다.
큰 어려움과 힘든 경험을 하면 성장하는 것이다.
어린이도 어른도, 큰 어려움을 경험 후 나의 삶과 습관과 가치관이 바뀐다.
그러한 성장 이후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말은 바꿔말하면, 지금의 어려움이 끝나도 또 어려움이 올 것이란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성장이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것이다.

이스라엘도 사울과 다윗 때 성장했으나, 솔로몬 이후 분열되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포로가 되었다. 
다행히 남유다는 정체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포로에서 귀환한 후, 남유다는 먼저 성전을 재건축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민족의 중심이 성전이고 , 예배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유다민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수문앞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들고 와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에스라는 낮이고 밤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온 백성이 울며 기도하고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바벨론 포로 이후, 그 아픔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40년 광야생활과 수많은 왕정생활에서 하나님보다 우상을 섬겼고 이방민족을 따른 이스라엘. 이런 백성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아프 이후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2020년 3월 11일. 코로나 팬대믹이 선포된 시기이다. 지금 엔데믹 시기이지만, 일상생활이 예전과 동일하게 회복되었지만, 교회는 여전히 팬데믹이다. 여전히 온라인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고, 앞으로도 영상으로 드릴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온라인 드리랄 땐 언제고, 지금은 왜 오프라인으로 오라냐고 한다. 그때 예배는 잘못된 예배였나?

4년 전 팬데믹시대에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모이는 것이 사회에 덕이 되지 않으므로, 그 모습이 최선이었다.
예배는 언제나 최선의 모습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내 삶에서 직장에서 구분하여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어디서든 내 마음을 온전히 드린다면 그것이 예배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도 이 산이든 저 산이든 영과 진리가 우선이다.
그러나, 내가 편하기 위해 나의 방식으로 예배를 드린다?
예배당이든 온라인이든, 그것은 올바른 예배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포로기는 하나님을 잃은 시절이었다. 두 눈이 뽑힌 채 끌려가는 왕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유대인들은, 후손에게 자신들이 어떤 민족인지를 다시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려 줄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교육의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족보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게 역대상하 등 역사서의 기록이었다.

그 마음으로 모두 수문에 모였다.
아무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에 6명이 민족을 대표하여 섰다. 온 민족이 아멘과 눈물로 화답하였다.

코로나시기, 어느 교회보다도 조심스러웠던 우리 교회.
조금씩 허용되고, 좌석 10퍼까지 허용된 때, 동안의 사람들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청하고 준비했다.
그 사람들의 열정과 담임목사님의 눈물, 그 아픔들과 간절함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그 큰 감동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예배자의 수가 줄어들었다. 학교 한반에 한두명만 교회다니는 시기가 되었다.
우리가 이제 말씀 앞에 나왔던 유다의 백성들처럼, 우리가 말씀 앞에 화답할 차례이다.
우리가 말씀 앞에서 눈물로 회개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에서 울어야 한다. 우리가 다음 세계에 남겨줘야 할 것은, 막막한 미래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몸부림 치는 모습들이다.
예배의 자리에서 눈물로 기도하자. 그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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