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8 주일4부예배
마 27. 45~46
추성훈목사님
<본문>
마태복음 27장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설교>
청년부 사역 중 '빨래'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연극이라 참 설렜고, 좋은 평이 많아서 또 설렜다.
전혀 모르고 갔던 연극. 그런데 처음 무대 분위기만 봐도, 어떤 이야기일지 느껴지고 기대되었다.
이런 첫 무대의 느낌이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그것처럼 예배때 중간에 있는 십자가가 생각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가상칠언은 고난주간에 자주 나누지만, 고난주간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 예배때, 십자가가 말을 걸어왔는가?
이 십자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닌 예수님의 고통과 사랑을 담고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내려오셨다. 그런데 그 중 십자가형은 가장 비참하고 슬픈 형벌이었다.
알리스터 맥그레스의 십자가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보면, 십자가형의 가학성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당시 유대인은 죄수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까지 포함했고, 거친 쇳조각이 박힌 채찍으로 등에 매질을 가했다.
그리고 죄수를 십자가 지고 처형장까지 가게 한 뒤, 모든 옷을 벗겼다.
그리고 대못을 박고, 중간에 받침대를 둔 후, 6시간에서 1주일까지 살아있다고 한다. 그렇게 질식으로 죽게된다.
유월절의 양보다도 더 무섭게 죽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고통보다 더 끔직한 고통이 있었다.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통이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도 이 잔을 옮기고 싶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제자들 및 베드로의 도망, 총독의 심문, 채찍에서도 침묵했던 예수님이,
하나님이 버림받았을때에는 고통을 외쳤다.
하나님과 분리됨을 느꼈을때, 그때 유일하게 고통을 외쳤다.
하나님과 분리된 고통을 느낀 또 한 사람은 다윗이었다.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뒤, 이 심정을 시편에서 이야기했다.
시편 51. 10~11이 그 본문으로, 여호와와의 관계가 끊길 것이 두려워할때, 그때 다윗은 제일 힘듦을 고백했다.
허나님과 끊임 없이 교류했던 예수님, 십자가에 박힌 그때만큼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오늘의 예배, 예수님의 그 고통을 회복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 십자가의 고통은 원래 나의 고통이고, 그 사람들의 조롱은 원래 나의 조롱이다.
하지만 그 고통과 조롱을, 예수님이 지어주셨다.
십자가 자체가 어떤 능력이 있을까. 우린 그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큰 사랑에서 그 능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절망과 하나님과의 단절을 뚫고 나오신 그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그 십자가의 하나님을 믿고 생각하는 것,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
작은 쪽지에도 기뻐하는 아버지들처럼, 하나님을 향한 작은 사랑이 주님을 기쁘게 한다.
우리도 단지 주님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히 10. 19.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그처럼 우린 주님을 통해 회복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고 찬양하자.
동안교회 시선기도회 말씀 기록_240503 (0) | 2024.05.21 |
---|---|
동안교회 수요영성집회 말씀 기록_240501 (0) | 2024.05.21 |
동안교회 시선기도회 말씀 기록_240426 (0) | 2024.05.21 |
동안교회 주일 4부예배 설교 기록_240414 (0) | 2024.05.21 |
동안교회 주일 4부예배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0407 (0) | 2024.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