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6 주일4부예배
요 19. 23~30
추성훈목사님
주제: 십자가4-테텔레스타이(다 이루었다)
<요약>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을 이루시고, 종으로서 주인의 말씀을 완전히 수행하시고,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값을 지불하셨다. 이런 십자가(테텔레스타이)의 말씀을 받들어,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뤄가는 삶을 살자.
<본문>
요한복음 19.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설교>
백상예술대학 시상식이 있었다.
거기서 90세의 이순재씨가 짧은 공연으로 연기 철학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때, 연기는 잘할 수는 있어도 완성은 아니다. 우리는 완성을 위해 끊음없이 노력하고 고민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이런 진정성과 열정을 보며, 사도바울의 고백이 생각났다.
빌3장에 보면, 고상한 가치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새로이 예수님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한다. 본래 바울만큼 율법적 의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그 고상했던 가치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상함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후 바울은 행위의 완전함이 아닌 믿음으로 부활의 확신을 가지려 했다.
빌3. 12~14절처럼 아직 잡은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달려간다고 한다.
예수님을 알기 시작하면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수태풍을 만나 내가 뒤집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고상함을 만나 달라지고, 그것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이땅의 것은 다 들의 꽃처럼 시든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개인의 목표가 아닌,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거기서 망가진 하나님, 사랑, 세계의 관계들을 회복시킨 것이다.
그래서 바울처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도록 하고, 주님께 달려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고, 내 행위가 아니라 나에게 주신 은혜를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은 셀EF가 있는 날이다. 많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계획세운 시기. 오늘 이자리에서 내 삶의 가치가 뭔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발견하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라고 외치셨다. 이 예수님의 다 이루신 것은 무엇일까.
1,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을 이루셨다.
성경에 그들이 옷을 나누고 제비뽑는것을 응하게 하려 하셨다. 죽는 그 순간에도 말씀이 그 안에 충만하신 것이셨다.
요 19. 28을 보면 시편 69편 1절 말씀을 인용한 것이었다. 이 시편은 학대와 폭력으로 고통을 부르짖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말씀의 성취를 이루셨다.
눅24장에 엠마오의 두제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 두 제자는 참 슬펐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예수 부활은 불확실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말해주셨다. 마음에 더디 믿었던 엠마오의 두 제자. 그들에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눅 24.44절에 열한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킨 그 모든 것을 성취하려 오셨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십자가란 책에는, 시편 22편을 비롯한 시편 전체의 순간을 나타내시고, 그것을 이루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을 위해 처절하게 순종하셨다. 그렇게 우리도 말씀으로 나아가길.
2. 예수님은 주인의 명령을 종으로서 완전히 수행하셨다.
그 당시 종이 주인에게 임무완수보고를 할 때 하는 말이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20.28에 섬기러 왔다고 하신다. 요 15.13에서는 우리에게 목숨을 버리신다는 의미를 내포하신다. 예수님은 이런 임무들을 기꺼히 수행하시고, 마지막에 테텔레스타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등떠밀려 내려온 것이 아니라, 인류구원의 목적으로 하나님과 일치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올려드리셨다.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기까지 약 6개의 많은 방해물이 있었다.
첫번째로 태어나실 때 헤롯의 영아살해이다.
두번째는 광야에서의 40일간의 시험이다. 그때 마귀가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말씀으로 이겨내셨다.
세번째는 제자들이었다. 선생이여 주여 하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 베드로는 원어로 비난하다 꾸짖다는 표현이 나올정도로 막아섰다고 한다.
네번째는 자신으 고민이었다.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처럼 이 일을 안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섯번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실때 바라바가 매달릴뻔 했다.
여섯번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라는 비판에 내려올 수 있었지만 끝끝내 오지 않으셨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는 십자가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 많은 공격 속에서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자유하게되신 예수님. 그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자.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받아지고 믿어지길.
당신의 손으로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으로 살고, 그 기쁨이 사라진 시기. 하나님을 찬송하게 만드시려는 그분의 의지. 그 의지에 따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순종을 배우자.
더 좋은 것을 찾으려 하는 욕심. 그 누구도 죄가 없을 순 없다. 시편 51.5. 우리는 죄악 중에 출생하였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어도 죄로 인해 망가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오늘이 중요하다. 과거는 지났다. 과거의 다른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세상에서의 괴로움과 허무함과 막막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으로 태어날 수 있다.
우리가 떠났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 회복시키는 주님의 그 손을 잡자. 염려하지 말자. 오늘의 하나님을 붙들자. 지금도 하나님은 그 목적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남은 시간, 하나님과 함께 가자.
하나님과 기뻐하는 시간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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