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3 주일4부예배
추성훈목사님
야고보서 5. 7~11
<제목>
중간점검3 어떻게 참아내는가
<요약>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참아내긴 정말 힘들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고, 오래 참아 심판을 면하며, 인내의 복을 받자.
<본문>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설교>
엘렌 클라이더 교수의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라는 책이 있다. 1세기 초 그리스도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을 다룬 책이다. 그때 교회는 선교보다는 기도와 교리교육 등 전인적 변화에 초점이 있다고 한다. 거기서 인내는 수많은 그리스도적 발효의 효소가 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따라 살기로 하고 이방인이 되어도 어쩔수없다는 그들의 태도가 세상을 바꾸는 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시절을 바라봐야하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행위가 우선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믿음에 따라 나온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1세기 기독교인에 비해 엄청 크지만 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교회는 점점 신뢰를 잃고 힘을 내지 못할까? 우리가 어쩌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것 아닐까? 우리의 열심이 하나님보다 앞서기 때문 아닐까?
우리가 아무것도 안할 순 없겠지만 우리의 행위가 좋은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우리가 세상에서 받은 상처로 우리의 입을 다럽히고 있는 것 아닐까.
교회공동체는 내부적으로는 사랑과 선행을 이야기하고 외부적으로는 그 사랑을 전하는 것인데 우린 그러고 있을까.
하나님은 전문가보다 오직 하나님을 배우기 원하는 성실한 사람을 원하신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만 성실해야 하는 것이다.
고전 1. 27에 보듯 하나님이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 한다. 그리스도안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야 하기 때문에 참아내야 한다. 내 기준과 생각 나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이 드러나게 찬양해야 한다.
믿음은 기억하고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말씀은 그만큼 힘들지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힘든 것은 아래와 같다.
1.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와 구원에 대해서 오랫동안 참고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참으심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벧후 3.9절에 나와있듯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분이 아니라 오래 참고 계신 분이시다.
야고보서 5장 7절 하반부에 농부가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한다. 이런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날을 기다린 것이다. 싹을 의울때 이른 비와 열매가 잘 익도록 하는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 우리은 이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은혜라고 부른다. 우리 삶의 처음과 마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는 잘 참아내고 있을까? 아니면 조급한 농부처럼 언제 비가 올지 기다리고 있을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주님이 강림하실째까지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자.
2 오래 참을때 심판을 면할 수 있다.
형제들끼리 원망하지 말아 구원에 이르게 하라고 한다. 이때의 원망이란 단어는 스텔라조 라는 것으로 한숨을 쉬다라는 표현이다.
사람의 한숨은 머지안아 원망이 되고 그것은 판단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판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지 판단을 하여야 하나.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헤아림을 받는 것으로 헤아림을 받는다 한다.
3. 인내는 복이기 때문이다.
야고조서 5장 11절에 욥의 인내흘 보라고 한다. 욥은 사탄이 하나님께 허락받고 심판을 한다. 갑작스런 행동에 욪이 한 행동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었다. 그런 절망스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한다.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서 죄를 찾지만 욥은 그 때를 기다리고 인내했을때 은혜를 받게 된다. 야고보서 5.11.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분이시사는 것을 욥이 깨달은게 물질보다 더 큰 은혜이다. 하나님을 묻고 엎드렸을때 하나님을 만나서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두 는으로 조게 된 것이다. 벧정 2장 20절에 악을 위해 고난받는것은 당연하지만 선으로 고난받은 것은 의롭다고 한다. 우리로 예수님이 그 고난을 받고 그것을 살아낸 것이 중요하다.
상반기동안 우리가 참은 것은 무엇이고 못참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참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만 이겨낼 수 있다. 그 성령의 말을 잘 이해하고 받으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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