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30 주일4부예배
추성훈 목사님
눅 7. 36~50
<제목>
중간점검4-어떻게 예배하는가
<요약>
예배의 의미가 무엇일까. 주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며, 복종하고, 섬기는 것. 그것은 예수님를 주로 시인하고, 탕감받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본문>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3)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3)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4)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4)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3)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설교>
중간점검을 하며 나의 인내와 감사는 어떠했을까 생각해봤길.
오늘은 예배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오늘 본문의 배경은 한 바리새인의 집이다. 바리새인은 식사하자했고 예수님은 응했는데,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향유로 씻어주었다.
우린 여기서 예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재. 경외와 존경으로서의 예배이다.
우리가 보는 하나님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거다. 그분의 영광 앞에서 인간이 두려운건 당연하다. 그 두려움은 원어로 야레라고 하는데, 그것을 하나님은 따듯함으로 바꾸신다.
두번째는 복종으로서의 예배이다.
시편 99편 5절에 엎드려 경배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샤라라는 말로 엎드려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처럼 열시미 엎드려 예배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더 큰 진실함이 요구되고, 친밀함을 느껴야 한다. 친밀함은 동등한 관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의 신뢰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샛째로 섬김으로서의 예배이다.
예배에서 종이 주인을 섬기듯 하라는 의미의 말씀들이 있다. 원래 세상에서의 종은 돈을 주고 팔려 죽으면 죽는 그런 신분이나, 하나님은 세상과 달리 그 종을 일정기간 이후에 자유롭게 하셨다. 출 21. 2절에 종이 7뇬이 지나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출 21.5절처럼 종이 계속 섬기고자 하면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길 수 있다. 그것은 종이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유를 포기할 만큼 주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종이 그렇게 ㅗㅇ신토록 섬기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진짜 자유와 사랑의 모습이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종 된 자라고 하는 곳에서는 이런 귀뚫린 종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여성의 행동은 무엇일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한 것이다.
본문에 죄를 지은 여인이라고 표현된다. 죄가없으시고 의로우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그 눈물은 예수님의 발을 적실 정도였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머리털이 주는 의미는 특이하다. 머리털과 수염이 남성의 활력과 힘을 준다고 인식된다. 에서와 야곱도 에서처럼 털많은게 정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머리털은 수치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머리털을 보이지 않는 것ㅇ었고, 머리털을 보이면 수치이다.
그래서 이 여인의 행동은 자신의 수치를 온전히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존재가 두려워졌고 자신이 답답하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부끄러움마저 머리카락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우리도 그런 더 깊은 차원의 예배를 두려워하지 말자. 기꺼이 자신의 발을 내어주신 예수님, 구뷴의 호의에 우리가 감사할 수 있도록 하자.
두번째는 탕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누가복음 7장 42절 이후에 보면 탕감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탕감받은 것이다.
본문에 보면 그 바리새인도 죄인인 여자가 들어오자 그것이 부담스러웟고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따. 그 바리새인이나 여자나 다 빚진자라고 보시기에 똑같아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 두사람 모두에게 빛을 탐감해주신다. 42절에 둘 다 탕감받았으니 누가 더 사랑하겠냐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발을 닦은 여성이 죄라는 빚을 지고 산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탕감함을 받은 메시야를 통해 그 은혜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여인은 어떠한 수치와 부끄러움도 나올 이유가 안되었기에 나아 올라와 발을 씻고 향유를 부으며 자신이 가진 최고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드린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46장 전후에 바리새인은 발씻을 물을 주지도 않았지만 이 여자를 보라며 말씀하셨다. 심지어 나드라는 극상품 향유로서, 가장 고귀한 낭비를 한 것이었다.
우리느느 바리새인 시몬인가, 아니면 여인인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나. 우리는 과연 고귀한 낭비를 하고 있을까.
마태복음 26장 10절에 여인에게 분개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그러지 마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를 좋은의미라고 생각했다. 신학자는 칼롬 예수키 라는 마로 적절한 아름다움이란 표현을 하였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옳고 그름으로 보지 않으시고 좋은 일이면 되었다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를 대신 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기념하고 싶으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마음이어야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이 세상으 ㄹ어떻게 도울지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들이 주님의 사랑을 퍼트리는 것이 되길.
우리의 예배가 좋은 것을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수치와 더러움을 깨닫고 덮어주시는 분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수치를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하는데 가장 가치있는 것은 어떻게 드릴까.
예수님께서도 그 여인이 가장 값진 것을 준다는것을 알아보시어 발을 내리셨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주님을 예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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