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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새벽기도 큐티본문 설교 기록_240703

설교말씀 모아/Dongan 새벽

by Choorysostom 2024. 7. 3. 09:12

본문

240703 새벽기도

추성훈 목사님

빌 1. 22~30

 

<요약>

주님 곁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음에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주님 이끄시는대로 이땅에서 고군분투하는 바울의 삶.  자신의 생명보다도 복음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과 우리에게도 바울이 있든 없든 그 복음에 합당한 삶(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 협력하고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기를 원한다.

 

<본문>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클로바노트를 활용하여 전문을 받아쓰기 하였습니다.

<설교>

빌립보서 1장을 마무리하는 오늘 본문에서는 이 복음 전파를 향한 바울의 진심과 열정이 더욱더 엿보이는 그런 본문입니다.

당시 빌립보 지역은 로마의 통치를 받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명목상으로는 통치를 받았지만 이 빌립보 지역은 작은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로마를 향한 충성이 아주 대단했던 곳이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운 장본인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먹고 사는 문제,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여러 기타 등의 어떤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충돌하는 그 세계관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들을 통해 증거되고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을 분명히 피력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공동체 성도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으로 인해 갇히게 된 상황 속에서도 녹록지 않은 현실의 삶을 참고 인내하며 바울의 선교를 돕고 재정을 후원하였으며, 세상과 다른 정체성을 로 살아가고자 많은 노력과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이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재판의 결과는 석방일 수도 있고 사형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도 모르는 일이지만 한 가지 확신하고 있는 사실은 이 바울이 갇힌 바 됨으로 인해 복음의 진전이 나타났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바울이 아닌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되는 어떤 기폭제 역할을 바울이 하고 있다라고 하는 사실, 이 사실 한 가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미 자신의 살고 죽음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위에 구절인 21절에서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멘. 바울이 간절하게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꿋꿋하게 살아서 자신의 계획과 뜻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다면 나의 죽음조차도 유익할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 23절인데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3절입니다. 시작.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바울은 지금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 자신이 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더 좋은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 살아있습니다. 바울은 살아있고 이 살아있다라고 하는 건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도 목적도 살아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것임을 믿기 때문에 바울은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4절입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이 생각하는 육신의 삶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위해서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는 시간 이것을 의미했습니다.

죽는 게 본인한테는 훨씬 더 유익한 일이지만 아직 육신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빌립보 공동체에게 있어서 자신의 이 도움이 아직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확신이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미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목적을 뛰어넘었습니다. 뛰어넘는 아주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사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합당한 삶이었습니다.

 

그가 육신으로 사는 시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조금 더 내가 헌신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조금 더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빌립보 공동체를 향해서 내가 살아있는 것이 유익할 거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약에 바울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만약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수많은 시간 고난을 당하고 겨우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남은 삶 어떻게 살아갈까요? 아마 남은 삶은 조금 더 편하게 고난과 고생 없이 편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삶에서 고상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을 이미 과거에 배설물처럼 다 여기고 다 뱉어내었고, 그 안에 오직 예수라는 고상함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기쁨이 예수와 함께하는 기쁨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만약에 그의 육신의 삶이 조금 더 연장되더라도 그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과 삶의 의미는 똑같은 것입니다.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삶과 죽음의 사이에 껴 있는 자신이지만 어떤 쪽을 가더라도 그의 선택은 예수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예수를 위해서라면 고난 또한 유익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5절에서 26절인데요.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자신이 석방되었을 때의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있습니다. 하나는 뭡니까?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함께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너희의 자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로 인하여 풍성하게 할 것이다.

절대로 다른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목적과 삶의 방향을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생애 가운데 지독한 고난을 당했으면 두 번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을 텐데, 바울은 사나 죽으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기쁨으로 충만함으로 다른 기쁨이 절대로 침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놀라운 신앙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죠. 빌립보서 1장 27절 28절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거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이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함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아멘.

 

바울이 빌립보 공동체에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라. 이것은 곧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을 위해서 협력하는 것이고,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증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를 내가 만나지 못하나라는 전제가 붙어 있어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함께 있어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바울이 함께 있어서 너희와 함께 헌신하고 사역했을 때 당연히 이 놀라운 열매가 맺을 것이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 안에는 누가 계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너희를 통해서 하실 일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1장 29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바울은 마지막 이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고난 받는 특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고난을 받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습니다. 마주하기 싫습니다. 원하지 않습니다. 근데 누구를 위하여 고난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 고난이 수치가 될 수도 있고 아픔이 될 수도 있지만 영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기뻐해야 하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 고난이 어떤 형태로 올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은 결국 어디에 이릅니까? 영광에 이르는 고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삶,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적 가치에 물들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요. 복음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그런 영광을 가르쳐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 영광을 옹호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영광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그 고난을 참으며 고난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은 내 힘으로 통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는 것이죠.

성령께서 도우실 때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태복음 5장 12절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하시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의를 위하여 박해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박해당할까요?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이러한 박해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박해를 받을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과 박해가 크면 클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같이 박해를 당했고, 고난 중에도 하늘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증거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소망하고 있는 영광이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실 예정이십니까? 오늘 이 새벽에 참되고 영원한 하늘의 가치를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하늘의 것을 소유할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에게 양식을 베풀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쁨과 감사를 우리가 이렇게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은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된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 주신 능력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 세상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동안의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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