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7 주일예배
추성훈 목사님
제목: 심부름-부르심에 스며들기.
에베소서 4:1~4
2주 전쯤 막내가 열난적이 있었다. 가끔 열감기가 나서 그러려니 했는데, 일주일 지나도 열이 안내려갔다.
그래서 큰병원인 서울의료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폐렴이었다. 기침을 안해서 몰랐던것. 이후 폐렴관련 약과 항생제를 받으니 나아졌다.
이렇게 느슨해질때, 아이의 작은 아픔마저도 놓치게 된다. 아이의 건강이 일상적이라고 생각했을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도 느슨해질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적절한 반응과 태도를 가지고 있나. 그냥 루틴으로 생각하진 않았나. 한번 돌아보길 원한다.
오늘 본문은 성도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강화시키는데 목적을 두었다. 에베소 교회는 2차 전도여행 막바지에 세워져 3차 전도여행시 3년간 양육한 공동체였다. 그렇게 정도 많이 가고, 에베소란 도시도 종교적 도전이 많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신전이 있었고, 상업의 발달로 수많은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져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공동체를 양육했던 것이다.
바울은 두기고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의 소식을 듣고, 그를 통해 권면의 이야기를 하였다.
에베소서의 중심 내용은 하나됨 이었다. 많은 은사를 가졌기에, 그 은사를 하나됨으로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 에베소 교회의 하나됨을 이야기했다.
이번 농선봉 주제는 심부름이다. 적절한 약이 몸에 스며드는 것처럼, 우리도 적절한 봉사로 세상에 스며들기 원한다. 우리가 성실히 준비하고 성령으로 농선봉을 통해 스며들길 원한다.
바울은 갇힌 몸이 되었으나 갇히지 않은 에베소 공동체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부르신 뜻에 맞게 합당하자고 본문 1~2절에 말했다.
헬라어로 부르심은 칼레오라는 뜻이다.
칼레오의 첫번째 의미는 이름을 붙이다라는 뜻이다.
김춘수시인의 꽃처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시편 136편처럼, 시편 139편 16절처럼 우리의 내장도 만드셨다고 할 정도로 이미 우리의 형질을 알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나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변함없이 나를 지으셨다는 것이다.
칼레오의 두번째 의미는 초대하다 이다.
우리는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초대받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예복을 입고 가야한다.
하나님은 그 부르심에 대한 반응과 태도를 본다는 것이다. 합당하지 않은 모습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칼레오의 세번째 의미는 증인이라는 것이다.
증인이란 뜻의 칼레오마이라는 것은 그 부르신자의 신뢰도 포함한다. 이 증인이 제대로 증언하지 못하면 부른 자의 신뢰도 떨어진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시기 위해 부르셨다. 우리를 다 아시기에 우리와 복음의 잔치를 벌이고 우리를 증인세우려 부르신 것이다.
오늘 본문 4장 2~3절에 오래참음 등으로 하나됨을 이뤄가라 한다. 겸손과 온유로 하나됨을 이루라 한다.
자기를 비워 종에 되신 예수님의 겸손을 보고, 나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맞춰서 나가라는 것이다.
그 퍼즐은 내가 맞춰주는 것이다. 내 퍼즐을 잘라서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퍼즐은 점점 작아지지만, 이 퍼즐이 맞춰지고 난 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자.
골로새서 3장 12절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오래참음을 옷입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이다.
나의 옷은 나에겐 아름답겠지만, 하나님의 옷은 모두에게 아름답다.
농선봉기간이라 정장을 입지 않고 농선봉티를 입었다. 정장을 입으면 몸이 굳고, 내 표정과 말투도 정장에 맞춰진다. 그렇게 6일간 정장을 입다, 월요일 쉬는날만 편하게 입고 아내의 남자친구로 살아간다.
이렇게 어떤 옷을 입느냐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옷을 입어야 그 성품에 맞춰진다. 하나님의 옷의 거룩함과 사랑스러움을 마음껏 드러내야 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옷을 입지 않아, 우리의 옷을 보고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습에 따르지 않고 특별해진 모습으로 따르는 것이다.
교회공동체는 세상과의 구별을 연습하는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안새려면 여기서 연습해야 한다.
옷에 걸맞는 태도와 말투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여기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항상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 나가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안맞는가. 철저히 주님만 만나고 생각해야 한다.
엡 4.4절을 보자.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소망을 갖는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될 때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분노와 열망이 있는 관계에서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다. 마귀는 조그만 일에도 우리가 불평하도록 만드실 것이다. 우리가 더 기분풀려고 갈등하려 할 것이다. 마귀가 우리에게 오지 못하도록 간구해야 한다.
재정이나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말자.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자. 우리가 다 할순 없지만 곳곳에서 새는 불평과 원망의 물줄기가 있을 것이다. 한 성령과 하나되도록 하자.
요한복음 17장 21~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것처럼 하나가 되게 하려고 하신다.
안싸우시도록 갈등하지 않도록 미리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한달간의 기간, 마귀의 이야기가 가장 틈탈것이다.
단순히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으로는 마귀에게 당할 수 있다.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이기에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것들은 하나님께 맡기자.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자.
우리가 할것은 부르심에 맞게 반응하는 것이다.
서로 분열하게 하는 마귀의 계략에 속지 말자.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맞추고 사람의 눈이 아닌 주님의 눈에 맞추어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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