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4 주일 4부예배
추성훈 목사님
제목: 심부름3 - 내가 매일 기쁘게
눅 15. 1~17
<요약>
십자가라는 고난의 상징은, 동시에 온 인류의 구원이라는 기쁨의 증거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기뻐하고, 그 기쁨을 헌신과 섬김으로 증거하자. 우리의 고난이 슬픔의 고난에서 기쁨의 고난으로 변화하기를.
<본문>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1)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1)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설교>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파리올림픽이 한창이다. 대한민국의 좋은 성적도 참 기쁘다.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그 이벤트를 배로 즐기려면, 친한 사람들과 같이 보는 것이다.
저번 주 남녀 대표팀 양궁 우승할때 아내와 함께 보았는데, 한발 한발에 희비를 교차하며 과자를 먹으며 즐겁게 보았다.
신앙생활도 벗과 이웃이 중요하다. 벗과 이웃이 있음에 기쁨을 나누고 그 기쁨이 커지는 것이다.
함께 기뻐하는 것, 그게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죄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 고난만 기억해서 공생애가 다 슬플거라 보지만, 사실 기쁨이 더 많았다.
사람들이 고침받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예수님은 기뻐하셨던 것이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이를 안좋게 보았다.
죄인에게 여지도 안주고 정결을 위해 거리를 두었던 바리새인. 영적 가스라이팅을 하며 죄를 알게하는 율법을 자신들의 도구로 삼은 그들.
그들에게 예수님은 불편했지만 죄인들에겐 희망이었고, 그 상징적인 표현이 오늘 본문과 같은 죄인과 식사하는 죄인의 친구인 그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죄인들은 본인들의 죄의식때문에 예수님이 마냥 편하진 않을 것이다.
죄로 인한 더러움과 수치심으로 나를 떠나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이겨내고 함께 친구가 되어주셨다. 이것이 하늘의 기쁨 천국의 기쁨인 것이다.
우리도 이 예배가 기쁨이 되길. 예수님이 우리의 고난의 이유가 아닌 기쁨의 이유가 되길.
예수님이 없던 시절 희망 없는 고난에서 희망있는 고난으로 바꾸어 주신 예수님, 기쁨을 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기쁨이 고난을 이겨내는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다시금 참된 기쁨을 외치며 예수님을 바라보자.
요 15 10절 11절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길.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으려면 말씀 안에 있어야 한다. 내 안의 성령이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사람인지라 정욕과 탐심이 있다.
어느날 스팸광고가 떴는데, 보니 게임광고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그날따라 한번 다운받아봤다.
그러자 너무 재밌어서 제어가 안되어서 결국 유료 아이템을 사버렸다.
그러고 나니 아이템이 아까웠고, 게임해서 패가망신한 사람이 있던 것을 알면서도 3일간 게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게임하는 내 모습이 검은 휴대폰화면에 비춰졌고, 평소에 거울 30번 보던 나여서 게임에 몰두하는 바보같은 모습을 보고 충격먹게 되었다.
헛된 기쁨에 빠져 있던 나. 바로 지우고 나니, 내 손으로 지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감사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를 바라보고 있으신데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본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가.
우리가 다시 일어나서 예수를 바라볼때 우리의 기쁨보다 훨씬 큰 기쁨을 주시는 것이 예수님이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길.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라는 찬송의 작곡가인 DM 셀프스라는 사람은 목재소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하던 중 한 팔을 잃었고, 좌절감과 낙심을 겪게 되었다.
그렇게 낙심하던 중, 세상적인 기준으론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를 얻게 되었다.
이 찬송은 지금도 힘든 상황 속에서 소망과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찬송이다.
이렇게 기쁨의 종교이면서 고난의 종교인 기독교. 십자가가 인류의 모든 기쁨을 끌어올린 고난인 기독교.
예수님께서는 이런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요 16. 22에는 제자들에게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보혜사 성령께서 그 기쁨을 놓아 주실 그 모습을 기억하자. 우리의 옆에 성령이 계심을 기억하자.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자.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와 힘께하시며 안보하신다.
성령을 간절히 찾고 고난의 삶을 걸어갈 때 기쁨의 길을 걸어가자. 성령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갈급함을 유지하자.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
그들과 함께 더러워 지기를 감수하신 아버지. 예수님의 참된 거룩은 이렇게 구원의 기쁨을 위해 나의 헌신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율법으로 남들과 구분되는 것이 거룩이라는 바리새인들.
하지만 하늘의 기쁨인 죄인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변질된 거룩보다 회개하여 삶을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 죄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결단의 현장이 이번 농촌교회 목사님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섬김의 손길과 따스한 말 한마디가 하늘의 식탁을 이끌어 주시는 한마디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일일이 기억하고 계시다.
우리의 그 마음과 수고를 아시는 주님을 믿으며, 우리의 기쁨을 아깝게 여기지 말고 기쁘게 나누고, 구원의 감격이 그들에게 임하게 하자.
이번 한주간의 삶의 현장이 주님께 충만한 시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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