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1 주일 4부예배
추성훈 목사님
제목: 심부름4 - 친절
에베소서 4:31~32
<요약>
우리가 주님께 스며들었을 때 친절이 나온다.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때,그리스도의 모습이신 친절함이 나온다. 이러한 친절을 가지고 한주간 살아가보자.
<본문>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설교>
스며든다는 표현이 이번 농선봉의 주제이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속으로 베어들다, 마음깊이 느껴지다라는 뜻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마음을 알고 느끼기 위해서는 부르심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내가 결합되고 연결되어야 한다.
한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른다는 것이다.
스며들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그 계획하심에 따르도록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스며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서지 못하면 완고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신앙생활은 하지만 성숙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숙되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죽는 것이다.
소금이나 설탕이 물에 녹아들때는, 물과 구분되지 않는 소금물과 설탕물이 된다.
우리도 그 형체가 구분되지 않을정도로 주님께 스며들어야 그 부르심에 스며드는 것이다.
더욱 완전하신 하나님께 스며들 때, 나라는 존재도 더욱 완전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우리가 스며들었을때 나오는 한가지는 친절이다.
성경에 친절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크레스토스 라는 단어가 친절을 의미한다.
온화, 유쾌, 선함 등의 의미를 갖고 있고, 크리스토스(그리스도)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걸 보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오늘 본문처럼 친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바로 버리는 것이다. 4장 31절처럼 모든 비난 악독 등을 버리라고 하였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생활습관이 유행했었다. 필요없는 것을 버리는 생활습관이다.
필요없는 것이 많으면 우선수위를 정하지 못한 것이고, 그래서 필요없는 것들을 버려 미니멀라이프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못버리고 있을까. 노함과 분함 악독함 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남들도 다 갖고 있으니 이게 없으면 바보취급 당할까봐 못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것들을 쓰면, 왜 내 내면은 엉망진창이 될까. 상대방이 뭐라 해서 뭐라 한것 뿐인데, 왜 내가 힘들까.
이런 것들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내가 필요없는 그런 감정들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악독함이 있다. 노함과 분냄이 있다. 떠들고 비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결국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위험하게 된다.
잠언에도 나오듯 말이 많으면 실수하게 된다. 이런 실수들은 악의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본문은 이걸 버리라고 하지만, 계속 내 안에서 살아있는 것 같다. 방법이 없을까.
앱 5 15~17절을 보자.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라고 한다.
바보같이 굴지 말고 주님의 뜻을 찾아보라고 하는 번역도 있다.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다른사람이 어떻게 신경쓰는지를 묻지 말고 가라고 한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에도 아까우니 세월을 아끼라는 것이다.
잠 25. 5. 많은 계획이 있어도 이 세상 한복판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해도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그 악의를 버려야, 올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악의를 우리가 벗어나긴 쉽지 않다.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예전의 습관(술취하는 것으로 표현됨)에서 벗어나서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성령님께 의지하여 나를 손해보게 하는 것이라는 걱정을 이기고 가라는 것이다.
전에는 누군가의 악독을 내가 계속 악독으로 풀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주의 뜻이 아니란 것을 성령께서 깨달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악독과 저주를 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악독과 저주도 이겨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온 것처럼 세상에 임하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친절이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
친절에 참여하는 이들이 함께 기쁨으로 나가는 그런 것이다. 방탕함이 일상이 되고 악을 악으로 갚는게 당연한 세상에서 그게 아니라고 증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건 우리가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함께 이뤄가주시는 것이다.
마가복음 9. 37절에 어린아이를 영접하는게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주의 뜻을 베풀기 위한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었다.
포도주는 숙성이 잘 된 것이 맛있다.
그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도 숙성이 잘된 것은 친절이다.
우리가 그렇게 친절을 베풀 때 사랑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친절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보내야 한다.
예수님도 자기 몫을 바라고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고 그 친절은 사랑에 귀인하였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친절을 맛봐 그 사람들이 주님께 온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농선봉이 마지막주차로 접어들었다.
결국 보니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가 통로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내는 친절의 통로로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그리스도의 친절을 실천해보자.
가족끼리 제일 화내고 큰소리치고 비방한다. 우리 가족에서부터 이 친절을 실천해보자.
성령께서 내 맘에 숙성되고 맛좋은 포도주를 쌓아가길 기대하며 친절하게 살아보자.
그 세상의 친절을 경험한 영혼들이 좋으신 하나님께 발걸음을 내딛길 소망하자.
그간 내가 친절하지 않았더라도, 성령님을 초대하여 바뀌어 보자.
성령님이 내 안에 가득 채워지면 숙성된 포도주처럼 맛을 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맛을 내는 귀한 한주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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