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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교회 중보기도학교 그룹기도회 말씀 기록_241010

설교말씀 모아/Dongan 주일 및 기타예배

by Choorysostom 2024. 11. 30. 00:15

본문

241010 중보기도학교 3차 그룹기도회
윤일식목사님
시 14. 1-7

 

<요약>

시편은 원어 자체가 노래가사라는 말로, 오늘의 노래가사는 어리석은 나발과 아비가일의 이야기이다.

나발은 백성들을 수탈하고 부패하고 가증하며 자신의 이익만 노리는 사람이다. 

아비가일덕에 다윗에게 죽임당함은 면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망하게 되었다.

나발과 같은 사람들과 문화가 많아진 이 세상. 이곳에서 주님을 믿는 것이 쉽진 않지만, 아비가일처럼 다윗처럼 공의와 정의를 따라 살아보려 노력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한다.

 

<본문>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설교>
시편은 세페르테힐림 이라는 원어로 세페르는 책, 테힐림은 노래(찬양)이다.
쉽게 말하면 이 150편은 모두 노래가사인 것이다.
시편은 대부분 누가 썼는지 언제 했는지 왜 했는지 표제를 통해 알려준다.
이 시편 14편도 다윗의 노래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다.
이 시편 14편은 시편 53과 동일한데, 한두절 추가되고 여호와와 하나님이란 단어변경 말고는 비슷하다.
둘 다 주제는 1절로, 어리석은 자에 대한 얘기다.
어리석은 자는 히브리어로 나발 이란 뜻으로, 어리석은자 미련한 자라는 의미가 있다.
사무엘상 25장에 다윗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던 내용이다. 다윗이 더 잘나가자 사울은 당연히 질투했고, 다윗은 도망갔다. 그 다윗이 처음에는 홀로 도망쳤지만, 어느새 600명이 모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을 먹이기 위해 나발에게 도움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고 하고 조롱했다. 요즘에 종이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제대로 조롱했다.
이때 아비가일이 와서 먹을것을 들고 다윗을 찾아왔다. 그리고 나발을 용서해달라고 하고 되돌아갔다.
그러고 아비가일이 돌아갔더니 나발은 잔뜩 술먹고 취해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비가일이 있던 일을 말하니, 나발은 그때 낙담하여 앓다가 열흘 후에 하나님이 치시고 죽었다.
나발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것에 있었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발같은 사람의 특징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다. 더러운 자가 되고, 떡먹듯이 백성을 먹는다. 떡은 레헵이란 단어로 주식인 빵을 의미한다. 따라서 밥먹듯이 백성을 먹은 것이다. 그렇게 갈취와 수탈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4절에 그런 사람을 열거하며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라고 묻는다. 무지는 할로 야데우 라고 할로는 부정어, 야데우는 야다의 변형으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오늘 본문에는 없다란 단어가 반복된다. 이런 반복은 강조하고 싶은 경우에 쓴다. 이 없다는 히브리어 엔 인데 부정부사로 하나도 없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세상. 우리가 교회 밖으로 나서도 잘 할 수 있을까.
의인 이라는 단어는 체다카 라는 단어로, 공의외 정의를 포함한 것이다. 체다카는 원래 길이를 재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 때 의인이 되고, 그 때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시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겸손하다는 뜻이다. 돈이 없기보다 겸손한 것이다. 그런 겸손한 사람을 행악자는 항상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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