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11 시선기도회
홍순영 전도사님
하나님의 약속이었음
사도행전 1장 1-6절
<요약>
세상엔 낮아진 신뢰를 높이기 위한 어음이 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을 믿고 헌신하며 살았는데, 로마 유대인들의 오해로 죽음 앞에 놓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어음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빛이 나며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도 지금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의 약속어음을 믿으며 이겨내도록 하자.
<본문>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1)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설교>
요즘 유행하는 흑백요리사. 거기서 이제 유명세를 얻은 백종원 철가방 도라이가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때아닌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18세 이상 자립예정 남성을 대상으로 한건데, 여자는 안나온다는 것이다.
이때 제작진은 합숙 등의 문제로 동성으로 하고, 나중에 여성으로 햐려고 했는데, 이렇게 오해받은 것이다.
무한도전과 무한걸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처럼 이런 부분들은 가끔 오해를 일으킨다.
세상에 어음이란 것이 있다. 채무증서인데,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 전에 하신 말씀이다.
스데반의 등장시기는 제자들이 일을 분담하며 7명의 집사를 뽑게 된다. 당시의 집사는 목회자와 장로의 역할을 겸하는 것이었다.
이 본문에서 스데반에 대한 칭찬은 단순히 칭찬이 아니라 평소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회당에 자유민들이 온다고 했는데, 신약시대에 로마에 6천만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그때 로마 밑에서 살고 있던 시기에 스데반이 설교 중이었는데 어떤 이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첫번째는 율법을 거슬렀고, 둘째는 성전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고귀한 율법과 성전을 건드린 예수. 하지만 예수께선 이부분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는게 아닌 완전하게 하려 했다하는데, 그런 말들과 스데반의 설교에서 유대인이 선지자를 죽였다는 등의 말들이 더욱 자극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스데반의 모습이 천사와 같았다고 한다. 당시는 국정감사나 축협같은 상황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취조당하는 상황이었는데, 스데반의 외모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 얼굴이 천사와 같다는 말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가 생각났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겹칠 때, 스데반은 구약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렇게 참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하나님이 이끄신 것이다.
우리가 가끔 실수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계획으로 자신을 전하신다.
스데반은 먼저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대에 지역을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갑자기 저 먼 땅으로 가라고 하다니.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은 그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고 떠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몇번의 사건을 겪고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목숨걸고 갔는데, 복에 겨운 모습이 아니라 하찮은 모습이 있었다. 그게 아마 참 어려운 마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군생활 시절, 55경비부대에 들어갔다. 혹한기와 유격이 없고 삼청동에서 근무하는 꿈의 부대. 찬양대를 섬길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테스트와 여러 조사를 걸쳐 갔는데, 상황이 열악했다.
목사님은 2주에 한번 오고, 찬양팀은 없고, 다들 자고... 청와대를 지키는 부대이자,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온 곳인데, 이런 상황을 마주하자, 복이 아닌 화가 된 것 같았다.
아브라함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슬픈것만 같고... 아들 낳기까지 25년? 후손이 번성하기까지 400년, 광야에서 40년, 예수님 오실때까지 400년...
이런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약속어음을 발행하셨기 때문이다. 현찰로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거래하고 서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약속어음은 상대방의 신뢰를 알기 위해 계속 물어보고 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약속어음과 같이, 믿음과 신뢰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현금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가는데, 그렇게 살려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하나님은 약속어음으로 발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도 이세상을 끝낼 수 있는 분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금과 같이 이야기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통헤 관계와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려 하시는 것이다.
히 11.6.에 보면 그가 계신것과 그가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단지 창조주가 아니라 우리와 계속적인 믿음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단순히 가져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생각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세상의 약속어음은 무효가 되기도 하고 화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도나거나 무효화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구해야 하는가를 질문해봐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보고 있을까.
우리에게 닥친 수많은 일들 가지고 하나님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끌어갈지 고민하는 우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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